‘원전 수사’에 이어 정권말 대형 악재 되나
김학의 前법무차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현재까지 드러난 사건의 윤곽은 2019년 3월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돼 있던 이규원 검사가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 긴급 출금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출금 요건 등 법을 잘 아는 이 검사가 단독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이 검사에게 무리한 긴급 출금을 지시 또는 종용한 법무부와 검찰의 윗선이 있는지, 법무검찰을 넘어 청와대에서도 개입한 것이 있는지 등 핵심 의혹들은 이제 막 본격 수사에 들어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상명하복이 제도화돼 있는 검찰의 조직 문화에서 실무자에 불과한 젊은 이 검사가 불법의 여지가 농후해 나중에 본인이 형사 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일을 혼자 결정해서 감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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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늦은 밤 김 전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태국 출국을 위한 탑승 수속을 마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 전 차관이 피의자가 아니어서 긴급 출금 요건이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국 저지를 위해 법무부와 검찰 윗선에서 이 검사에게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긴급 출금 요청서를 만들어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내도록 압박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정황이다.
당시 법무부의 출입국 관련 지휘라인은 박상기 장관, 김오수 차관,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었다. 장관 정책보좌관이었던 현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은 긴급 출금 직후 사후 수습을 위해 법무부 출입국 관련 부서에 대응법을 물어본 정황이 공개됐다. 검찰에서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 검사가 법무부에 긴급 출금 요청 사후 승인을 요청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내사번호인 ‘서울동부지검 내사 1호 사건’을 기재한 것과 관련해 출금 다음날 서울동부지검장에게 “검사장이 내사번호를 추인한 것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불법 긴급 출국금지 의혹 사건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았다. 두 사건 모두 주무부서나 기관에서 실무를 처리했지만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 없이 실행되기 어려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은 사소한 일도 상급자의 결정을 받아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인데 하물며 불법을 넘나드는 중대 사안을 윗선의 지시 없이 하급자 재량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번 사건에 등장한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은 이규원 검사와 사법연수원 36기(사법시험 46회) 동기생이며 연수원 수료 직후 같은 법무법인에서 2년간 활동한 인연이 있다. 또 2019년 3월 18일 문 대통령이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엄명을 내리기 나흘 전인 3월 14일 청와대에서 근무한 윤규근 총경이 민갑룡 경찰청장의 경찰 불기소를 비판한 국회 답변 기사를 이 비서관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하자 이 당시 선임행정관은 “더 세게 했어야 했는데”,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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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서울 출생인 이 부장검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과감히 전개해 유죄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수사 능력과 강단이 있는 검사로 평가받는다. 온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과거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뛴 적도 있을 만큼 투지가 강하다는 평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