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인이법’ 18개 무더기 입법… 여성변회 “졸속 우려” 재검토 요청 “1년에 2회이상 신고때 즉시 분리… 최소 1732명 아동들 갈곳 없고 양육권 다툼 부모 악용 소지도… 형량 높이면 유죄입증 더 어려워”
○ 무조건 분리하면 최소 1732명 갈 곳 없어
현재 정치권에 발의된 ‘정인이법’의 주 내용은 1년에 2회 이상 학대 신고가 접수된 아동을 부모와 즉시 분리하고,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은 경찰이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피해 아동의 재학대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아동을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해 쉼터 등 시설에 보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고가 2회 접수됐다고 무조건 아동을 보호시설로 보낼 경우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전국의 아동보호 쉼터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아동을 분리시키더라도 머물게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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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입소를 원치 않는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이혼을 하려는 부부들이 양육권을 갖기 위해 신고를 악용할 소지도 있다. 신수경 변호사는 “쉼터가 부족해 일부 피해 아동은 소년범 등이 생활하는 시설로 보내진다”며 “안전한 보호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작정 즉시 분리를 확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발의 법안에는 신고가 2회 접수된 아동을 즉시 분리하지 않으면 담당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형사처벌하는 조항도 있다. 이에 대해선 “현장을 전혀 모르는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장 공무원들이 아동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기보다 기계적으로 분리시키는 데만 급급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290명에 불과해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김예원 변호사는 “전담공무원은 아동학대 관련 정보를 관리하고, 경찰은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만들었던 것처럼 ‘아동학대 특별수사대’를 만들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수희 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즉시 분리 개정안은 입법자들의 비전문성과 아동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여준다. 절대로 통과돼선 안 된다”며 “아동의 행복과 이익을 중심으로 양육 환경을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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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죄는 가볍게, 무거운 죄는 더 무겁게”
아동학대 가해자의 형량을 높이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발의된 ‘정인이법’은 현행 징역 5년 이상인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 하한선을 징역 10년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최저 형량을 높이면 법원의 범죄 입증 기준이 높아져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에선 아동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거의 없다. 가해 부모는 어떻게든 무거운 처벌을 피하려고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할 수 있다”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해 자녀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등 괴롭힘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저 형량을 높이기보다는 대법원 양형기준을 조정해 최대 권고 형량을 현행 징역 15년보다 높이라는 조언도 나왔다. 형량의 범위를 넓혀 ‘가벼운 죄는 가볍게, 무거운 죄는 더욱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