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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준법감시제도가 기업 이익 더 늘리고 직원 만족도 높여”[파워인터뷰]

입력 | 2020-12-29 03:00:00

美양형위원회 캐슬린 그릴리 수석전문위원이 본 ‘준법감시제도 30년’
기업 스스로 범죄 방지 위해 마련
美도입 당시 기업들 거센 반대… 중소기업들은 “사형선고” 반발도




미국 연방양형위원회(USSC)의 캐슬린 그릴리 수석전문위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스스로 범죄를 방지하는 준법감시제도로 인해 미국에서의 경영 활동은 더욱 건강하고 가치 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양형위원회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릴리 수석전문위원 제공

“기업이 스스로 범죄를 방지하도록 하는 준법감시제도가 미국에 도입된 지 올해로 30년이 지났다. 우리는 강한 준법문화를 가진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내고, 더 높은 직원 만족도를 이끌어 낸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미국 연방양형위원회(USSC·The United States Sentencing Commission)의 캐슬린 그릴리 수석전문위원(General Counsel)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준법감시제도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미국의 기업 양형기준과 준법감시제도를 처음 당부했고, 올 2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출범했다. 동아일보는 올 2월부터 최근까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 연방양형위원회의 그릴리 수석전문위원과 전화 및 서면 인터뷰를 5, 6차례 진행했다. 그는 A4용지 60쪽 분량의 답변서를 보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의 준법감시제도는 언제 도입됐나.

“1991년 ‘실효적 준법 윤리 감시 제도(Effective Compliance and Ethics Program)’가 도입됐다. 한마디로 기업이 스스로 범죄를 방지하고 포착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윤리적인 행동과 준법 의지를 장려하는 기업문화를 촉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준법감시제도 도입 전 미국의 상황은 어땠나.

“화이트칼라 범죄가 범람했다. 특히 기업 범죄는 경영을 하다 보면 으레 따라오는 ‘비용’이란 인식이 강했다. 1986년 양형위원회가 법무부와 변호사단체, 법학 교수 등과 함께 최초로 진행한 공청회에서는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오히려 범죄 행위를 장려하고, 정작 범죄가 일어나는 도중에는 이를 모른 체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있나.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초기 양형위원들은 기업 범죄를 억제할 방법을 찾고자 했는데, 기업 범죄는 결국 경영상의 이득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양형위원회는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이 ‘자기 감시(self-policing)’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업이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갖춘 뒤 스스로 범죄를 당국에 보고하고 수사나 조사에 협조하면 벌금액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다. 일종의 당근과 채찍 접근법인 셈이다. 목표는 미국의 기업 경영 방식을 건강하고 가치 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도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양형위원회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사전 검토와 연구, 그리고 의견 수렴을 통한 개정 작업이었다. 1991년 이후 매년 각계각층으로부터 기업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과 자료를 수집하고 공청회를 열었다. 사전 검토를 위해 1988년에 열린 첫 공청회에는 대통령 경제자문회와 증권거래위원회가 참석했는데, 여기서 도출된 철학이 바로 ‘기업 범죄를 억제하는 방법으로서 기업 내부 감시의 중요성’이었다. 2000년대 초반 ‘윤리’를 제도의 명칭에 추가하기도 했다. 법원뿐만 아니라 법무부 노동부 재무부 국방부 증권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기업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모았다. 판사와 검사 보호관찰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든 양형위원회에 의견을 보낼 수 있었고 모든 의견을 검토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준법감시제도다.”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기업들은 자기 감시라는 개념에 회의적이었다. 초창기엔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설치하지 않으면 막대한 벌금형을 내리는 양형기준에 대해 기업들의 반대가 심했다. 기업들이 의회에 로비를 하기도 했다. 대기업은 인력과 자원을 활용해 준법감시제도를 만들고 그 실효성을 인정받아 벌금을 감경받을 수 있는데 중소기업은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구축할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사형 선고’가 아니냐는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공청회에 참가한 각계 전문가들은 기업이 준법감시제도를 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양형위원회는 오랜 검토 끝에 1991년 기업 양형기준과 준법감시제도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법원이 어떤 방법으로 준법감시제도를 명령하나.

“법원은 기업이 파산할 정도로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하거나 조건을 붙여 보호관찰(probation)을 선고한다. 기업이 이미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갖추고 있으면 벌금액을 크게 줄여준다. 하지만 준법감시제도가 없다면 법원은 보호관찰을 선고하며 ‘특별조건’으로서 기업에 준법감시제도를 개발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붙이는 목적은 동종 범죄의 재발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법원이 보호관찰 기간 동안 준법감시제도를 평가한 결과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다시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일종의 ‘테스트’인 셈이다.”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준법감시제도가 도입되기 1년 전 양형위원회는 오랜 연구 끝에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의 7가지 기준을 공표했다. 이후 약 30년간 연구와 검토 끝에 여러 번 수정됐다. 법원이 지정하는 ‘특별 전문가(special master)’도 이 기준을 바탕으로 개별 기업의 상황에 맞춰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평가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7대 기준은 첫째, 기업은 범죄를 방지하고 포착할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경영진이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준법감시제도가 효과적으로 실행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셋째,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은 과거 불법행위에 가담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넷째, 기업 내부에서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정기적 소통이 있어야 하고 직원들에게 교육 프로그램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 스스로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익명성을 보장한 내부 고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 범죄를 방지하고 포착하는 데 실패하거나 기업의 임직원이 범죄를 저지르면 징계를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부에서 범죄가 포착되면 이에 적절히 대응하며 추후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준법감시제도를 개선하는 행위도 여기에 포함된다. 7대 기준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준법감시제도가 효과가 있었나.

“2003년 전직 법무부 장관과 검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종합보고서에서 ‘준법감시제도는 10년간 기업들이 범죄를 방지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결론을 냈다. 양형기준은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만들도록 ‘충격요법’을 가했고 기업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켰다.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준법감시제도를 설치할지, 또 그것이 잘 작동할지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은 어떻게 하면 더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만들지, 성공적인 사례는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초기 양형위원회가 기대했던 바는 훨씬 뛰어넘었다.”

―통계적으로도 증명됐나.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632개의 기업이 법원에서 처벌을 받았다. 그중 3209건에서는 보호관찰형이 내려졌다. 법원의 명령으로 723개의 기업이 준법감시제도를 신설했다.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갖춘 기업으로 인정된 건 1991년 이래 총 11개다. 수가 적어 기업 양형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반대다. 양형위원회 데이터는 기소돼 법원에서 양형을 받은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갖춰 법무부에서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기업은 집계되지 않는다. 오히려 준법감시제도가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소를 담당하는 법무부와도 협업하나.


“법무부는 수사를 받는 기업이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갖추고 있으면 합의를 통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 법무부도 자체적인 평가 기준과 지침을 가지고 있다. 결국 양형위원회와 법무부 모두 ‘윤리적 기업시민정신(good corporate citizenship)’을 장려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상황에 비춰 보면 어떠한가.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창립자의 가족이 기업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준법감시제도는 최고경영진이 기업을 범죄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준법감시제도에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런 구조를 고려하면 법원이 준법감시제도를 당부한 것은 아주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준법감시제도와 7대 기준을 참고해 비슷한 법안과 가이드라인이 도입되는 추세다.”


美연방양형위원회는… 범죄 처벌수위 결정 양형정책 수립

1984년 양형기준법에 의해 설립된 미국 연방양형위원회(USSC)는 미국 사법부에 속한 독립기관이다. 양형위원회는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양형 정책을 수립한다. 범죄와 처벌 강도를 연구하다 보니 의회, 사법부, 행정부가 효과적인 범죄예방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지원하기도 한다.

양형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한 7명의 양형위원과 사무국, 전문위원실로 구성된다. 양형위원 7명 중 최소한 3명이 연방판사 출신이어야 하고 4명보다 많은 위원이 같은 정당에 소속돼 있을 수 없다.

캐슬린 그릴리 수석전문위원은 마이애미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JD)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2003년 양형위원회 전문위원이 됐다. 2007년에는 차석전문위원, 2013년 수석전문위원에 취임했다. 현재 양형위원회 전문위원실을 이끌며 양형 기준의 개정 작업을 관장한다. 전국 법원의 형사 판결에서 내려진 형량과 양형 요소를 연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