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까지 출연해 美로봇업체 인수
1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번 거래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지분 80%를 확보한다.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뿐만 아니라 정 회장도 개인 자격으로 지분 20%를 보유하게 된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11일 환율 기준으로 2389억 원에 달하는 개인 돈을 투자한다. 국내 재계의 주요 인수합병(M&A)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 밝힌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구조를 ‘자동차 50%, PAV(개인항공기) 30%, 로봇 20%’로 가져가겠다는 자신의 구상을 이번 투자로 재확인시켜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현재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그룹은 현대차그룹에 지분 80%만 넘기고 나머지 20%를 보유한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 인공지능(AI)으로 사람의 감정을 이해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도 군사, 물류, 제조 분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옛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미국 민간 우주업체 ‘스페이스엑스’의 연료탱크 시험에 동원되는 등 다양한 쓰임새를 뽐내 왔다. 현대차그룹의 제조 경쟁력과 소프트뱅크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경험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현동진 현대·기아차 로보틱스랩 실장은 “현대차그룹의 로봇사업은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B2C)를 지향한다”며 “AI 기반으로 언제든 고객 응대가 가능한 서비스 로봇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모빌리티, 의료용 착용로봇 사업을 확대하고 동시에 휴머노이드 형태의 이동형 서비스, 물류 등 로봇사업 분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경쟁력 있는 기업과 협력하겠다는 방침이다. 현 실장은 “로봇 산업은 여러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상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 로봇 수요가 많아지는 건 로봇 분야로의 투자 확대와 서비스 확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오른 2018년부터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전기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 기업과 협력에 나서고 있다. 독일 ‘아우디’와의 수소전기차,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기업 ‘아람코’와의 수소충전소 협업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올해 3월 미국 자율주행 기업인 앱티브와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한 데 대해 “합작법인 형태로 가야 다른 자동차 회사에도 (부품) 공급이 가능하다”며 개방형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