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설치미술가 이경호씨 3도만 올라도 지구촌 수십억 난민 경종 울리려 산에 좌초된 배 설치 내부엔 희망 상징 무지갯빛 조명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 세워진 이경호 씨 작품 ‘노아의 방주’. 공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아이가 어렸을 때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이 있어요. 해열제로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한밤중에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죠. 사람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위급 상황이 닥치는데, 생명체인 지구의 평균 온도가 3도에서 6도 이상 오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9일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정상에 세워진 ‘노아의 방주’ 앞에 선 설치미술가 이경호 씨(53·사진)는 “코로나19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치게 될지, 이렇게 길게 위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후위기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연미산에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150년 인류가 기후위기에 잘못 대처해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70m 상승한 대홍수 상황을 설정했다. 좌초된 방주는 2200년 연미산에서 거꾸로 처박힌 채 발견된다. 코로나19 속에 열린 올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참가작 중 관람객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가는 1987년 프랑스 디종미술학교에서 유학한 이후로 2000년까지 프랑스에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조형예술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1989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고 프랑스 현대미술계에서 주는 여러 상을 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제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게 되면서 아이가 살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위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생태 사상가 토머스 베리(1914∼2009) 연구 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창원, 울산, 광주 등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회에서 녹아내리는 빙산을 형상화한 작업을 선보였고, 밀라노, 서울, 베이징, 파리 등 전 세계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색 석유 덩어리인 플라스틱 봉지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미디어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 날 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녹아내린 거대한 빙산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봤어요. 현재의 추세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3.7도 상승할 것이라 합니다. 2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생태복원력을 잃어버려요. 바다의 거대한 산소공급원인 산호, 플랑크톤이 제일 먼저 멸종돼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집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몰려 사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면 수십억 명의 난민이 발생해 전쟁과 테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죠.”
연미산에 설치된 방주 내부로 들어가면 ‘데드라인 1.5’라는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동영상이 상영된다. 노아가 비둘기를 날렸던 창문에는 무지갯빛 조명이 설치됐다. 지금이라도 인류가 노력해 지구 기온 변화를 1.5도 이내로 막는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다.
“학자나 교수들의 1시간 강의보다는 예술가의 작품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팬클럽을 가진 BTS, 블랙핑크 같은 K팝 스타,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과 이우환, 아이웨이웨이 같은 유명 미술작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1%의 기업인과 예술인들이 먼저 내연기관 차량과 플라스틱 소비 줄이기를 실천하고, 대중의 동참을 호소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공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