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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자가격리인데… 변호사 시험은 되고, 의사 시험은 안돼

입력 | 2020-11-25 03:00:00

각종 자격시험 ‘응시 기준 제각각’ 논란




수능 별도시험장 방역 24일 광주 남구 동아여고에서 교사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증상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를 별도 시험장을 소독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코로나19 확진자와 의심환자 등 방역당국으로부터 자가격리 통지서를 받아 격리 중인 자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이달 19일 이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확진자뿐 아니라 자가격리자의 응시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시원은 의사,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영양사 등 보건의료인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하루 뒤인 20일 법무부는 제10회 변호사시험 일정을 공고하면서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자라도 시험일 이틀 전까지 보건소에 따로 사전 신청을 하면 응시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같은 자가격리자라도 변호사시험엔 응시할 수 있지만 의사시험은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주관하는 각종 자격시험과 관련해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응시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들은 시험 관리 비용과 인력 문제를 들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원자들은 몇 년씩 준비한 시험을 볼 기회를 하루아침에 빼앗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며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시원 주관 시험은 이달 21일 위생사 시험이 있었고 28일 치과기공사 시험이 예정돼 있다. 두 시험 지원자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이른다. 시험일 전에 확진 판정이나 자가격리 통보를 받으면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 1월엔 의사, 간호사, 약사 시험도 있다. 이 때문에 대한간호협회는 24일 “국가가 자의적으로 코로나19 자가격리자까지 응시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만 앞세운 안일한 행정 만능주의”라며 “정부가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해결해 달라”고 했다.

이에 비해 법무부는 내년 1월 5∼9일 치러지는 변호사시험에 자가격리자도 응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시험 시작일 이틀 전인 2021년 1월 3일까지 보건소 승인을 받아 별도 신청을 하면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자가격리자 응시를 제한한 시험 주관 측은 자가격리자들까지 응시 기회를 주기에는 인력과 예산이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기사, 산업기사 등 496개 기술자격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시험 하루 전날까지 방역당국으로부터 자가격리자 명단을 통보받는데 이들을 위한 시험장소를 따로 준비하고 감독관을 따로 선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를 위한 추가 예산과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확진자도 응시를 허용하는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유일하고 자가격리자에게 응시 기회를 주는 시험은 교사 임용시험과 일반 공무원시험, 변호사시험 정도다. 방역당국도 국가 주관 시험과 관련한 기준을 명확히 내놓지 않고 있어 논란을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4월 발표한 ‘시험 방역관리 안내’에는 ‘입원치료통지서 또는 자가격리 통지서를 받아 격리 중인 자’는 시험장에 출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달 10일 공개된 코로나19 대응지침에는 ‘장례, 시험 응시 등 시급성이 요구되는 경우’ 자가격리자도 모니터링 담당자와 함께 이동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방대본 관계자는 “확진자와 자가격리자의 외출 및 시험 응시에 관한 별도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지 image@donga.com·박재명·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