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광 법무법인 중원 변호사
이기광 법무법인 중원 변호사(가운데)가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경북 군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중·후반의 모든 농촌이 그렇듯이 매일매일 무료하고 회의적인 삶이 반복됐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다녔다. 좀 더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 지게로 소풀을 먹이다 첫째, 무거운 지게를 잘못된 방향으로 지고 일어서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므로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 둘째, 균형감을 맞춰야 한다. 셋째, 지게와 하나가 돼야 한다. 넷째, 짐을 많이 싣게 되면 움직이지 못하니 절제해야 한다. 다섯째, 인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더불어 ‘나는 농사꾼 체질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대도시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이루려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 끝에 대구고 진학에 성공했다. 하지만 2학년 재학 중 예기치 않은 농업 약재 중독 사고로 뇌병변 2급 장애를 안게 됐다. 후천적 장애를 안은 그가 학교를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책가방을 들어주던 외할머니, 비가 올 때면 업어서 등교를 시켜주시던 학교 앞 모자 가게 아저씨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주변에서 많은 격려와 용기를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사회와 그들에게 진 빚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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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장애인 판사라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장애인 판사를 만나 부족한 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말들은 그를 더욱 괴롭혔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몇 배는 더 신중하게 현장 검증을 했다. 판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면서 남다른 자세와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겸허한 마음자세와 판사로서의 내면적 자긍심,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혜는 나를 이끈 원동력이자 판사로서 꼭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기광 변호사의 법관 시절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그를 ‘넉넉한 인품의 판사’라고 평가한다. 한 지인은 “그는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울산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사법교실, 진로 멘토링 강연, 직장 체험 프로그램, 발달장애 학교 장학금 전달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기도 했다”며 “법원 내에 장애인들을 위한 화상 전화기, 점자블록, 장애인 전용 화장실과 주차구역을 설치하고 수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약자들의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법의 판결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재판이 끝난 후 따로 찾아가 위로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인생을 살아오며 자신이 받았던 도움과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변호사로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구지체장애인협회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그는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이나 장애인을 돕거나 강연 활동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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