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은 정조(재위 1776~1800)의 비 효의왕후 김씨(1753~1821)가 조카 김종선(1766~1810)에게 ‘한서’의 ‘만석군석분’과 ‘신당서’의 ‘곽자의열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 내용을 1794년(정조 18) 필사한 한글 어필이다.
효의왕후는 이 두 자료를 필사한 이유에 대해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충박질후)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근신퇴양)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귀감(본보기)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발문에서 밝혔다.
이 한글 어필은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한글흘림체의 범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제되고 수준 높은 서풍(書風)을 보여준다.
특히 왕후가 역사서의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며 당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국문학, 서예사, 역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작 시기와 배경, 서예가가 분명해 조선시대 한글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아울러 어필책을 보관해 온 오동나무 함 겉에는 ‘전가보장’(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가문 대대로 전래된 역사성을 증명해주며, 원형 또한 잘 남아있다.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문화재청 제공)© 뉴스1
수화승 평삼은 40여년간 활동한 이력에 비해 남아 있는 작품이 약 11점으로 많지 않지만, 이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는 그가 본격적으로 수화승이 돼 17명의 대단위 화승들과 합작해 제작한 대표작 중 하나이다.
날씬한 신체와 둥근 얼굴에 가늘게 묘사된 이목구비, 어린아이에 가까운 얼굴, 화려한 문양과 두터운 호분을 덧발라 입체감을 준 기법, 적색과 녹색, 청색과 흰색 등 다양한 색채를 조화롭게 사용한 점 등은 18세기 후반 괘불도 양식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문화재청 제공)© 뉴스1
예고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선원제전집도서 목판’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저본으로 해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 완질이다. 판각에는 당시 지리산과 조계산 일대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대선사 선수(1543~1615)를 비롯해 약 115명 내외의 승려가 참여했다.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 목판’은 고려 승려 지눌(1158~1210)이 지은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론’을 1604년(선조 37)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불경 목판으로 총 11판의 완질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은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 해 1611년(광해군 3) 여름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돼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으로, 총 335판의 완질이 전래되고 있다.
권5의 말미인 제118장에는 선수를 비롯한 태능(1562~1649), 각성(1575~1660) 등 여러 승려의 이름이 확인되며, 판각질에는 판각에 참여한 응준(1587~1672), 승희 등 승려와 김득림, 조응도 등 53명의 각수 이름이 확인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 등 5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