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유병록 지음/136쪽·9000원·창비
“다 그만두고 싶지만” “보잘 것 없는 욕망의 힘으로”(‘다행이다 비극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버틴다.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는 처지. 하지만 때로 “회사니까/슬픔을 나누는 일은 어색하니까/구원을 찾거나 함부로 조언을 주고받는 곳은 아니니까”(‘회사에 가야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출근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일로 분주할 땐 슬프지 않은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회사에서는 손인 척” “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기도 한다(‘슬픔은 이제’). “양말에 난 구멍”(‘슬픔은’) 같아서 들키고 싶지 않다.
‘그 숲에서/어린 바람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닐 텐데//돌멩이를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꽃잎을 만져보다가/개울에 슬쩍 손을 넣었다가/발을 담그기도 할 텐데 … 얼마나 컸는지 키를 재보고 싶을 텐데//너에게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을 텐데//한번 꼭 안아보고 싶을 텐데 … 너무 멀고 먼/오늘도 근처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널 두고 온/거기”(‘너무 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