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기피 증세 호소하기도 낙태죄 폐지 놓고 논란 커지자 “나도 낙태” 경험 공유하며 응원
“낙태까지 했다는 건 ‘닳고 닳았다’는 뜻 아닌가요.”
대학생 정모 씨(24)는 최근 한 온라인 게시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2018년 첫 남자친구와 사귀다가 불가피하게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 피임을 철저히 했는데도 벌어진 사고였다. 수술 뒤 그는 사회생활이 힘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생각 없이 관계 맺는 여성’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얼마 뒤 듣던 수업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찬반 토론’은 더 괴로웠다. 한 남학생이 “솔직히 그런 수술까지 치러본 여성들은 경험이 적지 않을 텐데, 스스로 조심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당시 정 씨는 혹시라도 속내를 들킬까 봐 괜히 더 낙태죄 폐지에 열을 올려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 상처는 더 커져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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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운데 동아일보가 만난 여성 5명은 길게는 10년이 지나도 몸과 마음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수술 당일 경험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낙태 여성을 향한 성희롱과 모욕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수술했던 김모 씨(28)는 수술 후 겪은 성희롱으로 사람 만나는 걸 꺼렸다. 당시 남자친구의 지인들이 끔찍한 전화를 걸어댔다고 한다. 무작정 걸어놓고 아무 말도 없이 이상한 신음소리만 내다 끊었다. 김 씨는 “내가 더러운 사람이라고 여겨져 이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만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울먹였다.
임신은 남녀 공동 책임인데도 연인관계에서 여성을 죄인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모 씨(37)는 9년 전 수술 당일에 남자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던 걸 떠올렸다. 이후 집으로 찾아온 그는 “널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자서 몸이 쑤신다”며 안마를 요구했다고 한다. 박 씨는 “남자친구에게 의지하고 싶어 ‘저 사람도 힘들 거야. 내 부주의지’ 하며 더 헌신적으로 대했다”고 말했다.
낙태는 예상치 못한 후유증도 만들었다. 김모 씨(30)는 2009년 수술 뒤 하복부 통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아무리 검사해도 몸에 이상이 없다.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커져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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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조지윤 인턴기자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