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책 읽는 여성
안토넬로 다메시나가 그린 ‘수태고지의 마리아’(1475년·왼쪽)와 조선시대 윤덕희가 그린 ‘책 읽는 여인’(18세기). 서양 회화와 달리 한국 회화사에서 책 읽는 여성을 묘사한 그림을 찾기는 어렵다.
한국 회화사의 경우는 어떤가? 전통 시대를 통틀어 책 읽는 여성을 묘사한 그림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 드문 예가 윤덕희(尹德熙·1685∼1776)의 그림이다. 책 읽는 여성의 자세와 배경을 감안할 때, 윤덕희의 그림은 아버지 윤두서가 18세기 초에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인 미인독서(美人讀書)의 영향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이도 분명하다. 윤두서의 그림은 책을 읽지 않는 다른 여성과 기물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반면, 윤덕희의 그림은 홀로 책 읽는 여성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 여성은 홀로 있지만, 혹은 홀로 있기에, 책을 통해 보다 큰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윤덕희의 그림에 묘사된 이 여성은 과연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제목이 드러나 있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책의 모양과 책을 읽는 자세를 감안할 때 경서(經書)를 읽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이웃 나라의 전통 회화사에는 여성이 가벼운 책을 누워서 읽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존재하지만, 한국 회화사에서 그런 그림을 찾기는 어렵다. 임윤지당(任允摯堂)이나 강정일당(姜靜一堂)처럼 경서를 읽고 수양에 매진한 여성들이 칭송받은 사례가 한국 역사에는 제법 있다. 윤덕희의 그림은 아마 그러한 여성을 묘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황은 한국 회화사에 왜 여성이 독서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드문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조선 후기 여성들은 대체로 한글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그러한 독서는 그들의 합당한 일로 간주되지 않았고, 특히 당시 지배층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글 소설을 읽는 여성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대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물론 세상은 바뀌었다. 출판계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오늘날 출판계를 지탱하는 독서 인구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현대에 이르면 독서하는 한국 여성을 그린 그림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