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상징’ 긴즈버그 대법관의 삶… 낙태 옹호-여성 생도 입학허용 판결 性을 섹스 대신 젠더로 표현… 이름 약자 RBG 기념품 큰 인기 그의 일생 다룬 영화-다큐 제작도
긴즈버그 대법관이 별세한 다음 날인 19일(현지 시간) 워싱턴 시민들이 대법원 앞에서 그의 이름 머리글자를 딴 ‘우리는 당신이 그립다 RBG’ 팻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등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그는 평생을 양성 평등과 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해 힘써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대형 성조기가 조기로 게양된 대법원 앞 도로는 전날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기리는 수백 개의 메모와 편지, 꽃다발, 촛불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별세 소식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추모객들이 놓고 간 것이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온 데이나 엑스커트 씨는 “평생 여성을 위해 싸워온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 신장에 헌신해온 미 사법부 ‘진보의 상징’ 긴즈버그 대법관이 별세하자 미 전역에서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진보의 영웅이자 수십 년간 여성 변호사들의 역할모델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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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을 나와서도 법원 서기 채용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나는 유대인, 여성, 엄마라는 이유로 삼진 아웃을 당했다”고 회고했던 시기다. 결국 대학 은사가 뉴욕법원 판사에게 “긴즈버그를 받지 않으면 학생을 보내지 않겠다”고 말해 겨우 서기로 들어갔다.
고인은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거쳐 1993년 수도 워싱턴의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 중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상원에서 96 대 3의 압도적인 지지로 의회 인준을 통과했다. 긴즈버그는 2006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퇴임하고 2009년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취임하기 전까지 9명의 대법관 중 홍일점이었던 시절을 “최악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면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엔 늘 “9명 전원”이라고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여성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낙태를 옹호했다. 1996년에는 157년간 남성 생도만 받았던 버지니아군사학교가 여성 생도를 받아들이도록 판결했다. “재능과 능력이 평균을 넘어서는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남녀 임금차별 문제를 소급해서 소송할 수 없다는 판결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을 통해 강한 반대의견을 내며 의회에 법안 수정을 촉구했다. 결국 의회는 소송의 시점 제한을 완화한 ‘릴리 레드베터 법’이라고 불리는 공정임금법을 통과시켰다. 성(性)을 생물학적 의미가 강한 ‘섹스(sex)’ 대신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젠더(gender)’라고 표현한 것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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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9년 대장암이 발병한 이후 췌장, 폐 등으로 전이되며 모두 다섯 차례나 암과 싸웠다. 긴즈버그는 90세 때까지 연방대법관으로 일한 존 폴 스티븐스처럼 오래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신아형·이윤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