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 체불임금 37번 주고도 남는다… 한 도시를 바꿀 미래투자도 1조면 돼
고기정 경제부장
여당 의원이 설립한 이스타항공이 3월부터 직원들에게 체불한 임금이 250억 원이다. 파일럿이 되기 위해 미국에서 비행학교 스쿨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면허를 땄던 40대 후반 조모 기장은 한국에 돌아와 입사한 지 5년이 채 안 돼 이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했다. 월급도 못 받은 채 회사를 그만두게 된 직원이 그를 합쳐 605명이다. 조 기장은 아직 미혼이라 실업수당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겠지만 다른 동료들은 이미 대리운전, 건설현장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9300억 원이면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못 받은 임금을 37번 주고도 남는다. 이번 위기로 한순간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이스타항공 직원뿐이겠는가.
이커머스 업체 쿠팡이 경북 김천에 첨단물류센터를 짓기로 했다. 쿠팡은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에 이어 고용 규모 4위다. 2022년 완공하면 약 1000명을 신규 인력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어드는 지방엔 가뭄 속 단비나 다름없다. 당연히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류센터 건설 기간 동안에만 지역경제유발효과가 1600억 원, 취업유발효과는 65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물류센터 건설에 드는 돈은 1000억 원. 9300억 원이면 이런 물류센터를 9개 더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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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戰時)경제 상황이나 다름없는 시기다. 재정 지출 수요가 발생하면 무리다 싶을 만큼 과감하고 신속하게 풀어야 한다. 하지만 재난구호 한다면서 거의 전 국민에게 휴대전화 요금으로 2만 원씩 나눠주는 건 포퓰리즘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대통령은 통신비 2만 원이 국민 모두를 위한 작은 위로라고 했다. 내가 받은 코로나 상처가 왜 2만 원짜리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위로는 사양할 테니 큰 위로가 필요한 다른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줬으면 좋겠다. 나라 곳간에 돈이 없어 민간 자금까지 끌어들여 한국판 뉴딜을 한다고 하니 차라리 이 돈을 그런 곳에라도 쓰게 되면 뭐라도 남는 게 있을 것 같다. 뻔히 보이는 의도를 호의로 치장하지 말아 달라. 국민을 위로한다고 했지만 실은 정부 여당이 그 돈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사실상 전 국민 지급에 성공했다고 말이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