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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암세포’ 제공자 헨리에타 랙스를 아시나요?

입력 | 2020-09-11 03:00:00

아프리카계 여성 랙스의 세포, 70년간 동의없이 연구에 쓰여
과학계, 탄생 100주년 추모 ‘세포주 윤리문제’ 다시 논의




이달 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에 대한 장문의 사설을 실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1951년 31세로 숨진 헨리에타 랙스(사진)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수많은 의학적 혜택을 누리지 못했을 수 있다.

랙스는 의학 연구자나 의사가 아니다. 인체 세포 기증이라는 행위를 통해 암과 면역학, 감염병 실마리를 밝힐 기초 학문 발전에 이바지했다. 전 세계 의학과 생명과학, 바이오 업계가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는 랙스를 추모하는 이유다. 랙스의 삶과 그가 남긴 유산을 되돌아보고 그가 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윤리 문제를 되짚어보는 진지한 논의도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추모에 나선 것은 세포 기증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광범위한 실험에 사용된 첫 사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헬라(HeLa)’라는 이름의 세포주는 그의 자궁경부에서 채취한 암세포다. 세포주는 동일한 유전자 구성과 특징을 갖는 배양 세포로, 영양만 공급하면 무한히 증식하도록 만든 ‘불멸 세포’다. 세포주는 동일한 조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는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무척 중요하다. 헬라는 결국 사람 세포 가운데 최초로 실험실에서 증식하는 데 성공해 최초의 인간 세포주가 됐다.

이 세포주는 70년 가까이 증식을 이어오며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 최초의 복제세포 개발,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법, 암 연구, 유전자 지도 연구, 독성검사 등 전 세계 의학과 생명과학의 판도를 바꾸는 다양한 연구에 기여했다. 암세포 연구자인 이현숙 서울대 교수는 “잘 자라고 오랜 연구로 정보가 축적돼 신뢰성이 높아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세포주”라며 “헬라 없는 분자세포생물학 실험실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랙스가 생전에 이런 불멸 아닌 불멸에 동의했느냐다. 가난한 농민으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던 그는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의료진은 치료 과정에서 남은 세포를 본인 동의 없이 살려둬 이를 불멸의 세포주로 만들었다. 최초의 세포주 헬라 덕분에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성공을 거둔 실험으로 의학 발전에 속도가 붙었다. 수많은 생명공학 기업이 이 세포주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정작 세포 기증자인 랙스와 가족에겐 아무런 대가가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 동의 없이 의료기록이 공개되고 심지어 게놈 정보가 온라인에 발표되는 등 ‘공공재’처럼 취급됐다.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프리카계에 여성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인종차별, 젠더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과학자들은 “세포주를 만든 모든 과정이 윤리적이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헬라 세포주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부 기업은 세포주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랙스를 기리는 재단에 기부하고, 가족과 다른 검체 제공자를 위해 쓰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랙스의 손자 알프레드 랙스 카터 씨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과학자들이 잘못된 방법을 썼지만,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며 암 연구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지난달 지인들이 설립한 ‘헨리에타 랙스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그가 태어난 달인 8월부터 1년간 일대기를 조명하고 그가 남긴 업적을 평가하는 기념사업을 시작했다. 네이처와 ‘미국의사협회지(JAMA)’를 포함해 권위 있는 학술지들이 기고를 통해 그를 기렸다. 또 세계 최대의 의학 연구기관인 미국립보건원(NIH) 프랜시스 콜린스 원장은 검체 채취와 관련된 연구윤리 정책의 변경을 시사하고 나서기도 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