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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사냥요리의 ‘끝판왕’ 악어 넓적다리 스테이크

입력 | 2020-08-19 03:00:00


‘꽃피는산골국빈’의 산토끼탕.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무용총 수렵도나 서양의 라스코 동굴벽화에서 보듯이 인류는 주로 사냥을 통해 고기를 얻었습니다. 오랜 기간 다양하게 발전해온 수렵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졌고, 일부에선 호사스러운 취미로 즐기고 있지요. 최근 영국 왕실의 사냥 장면이 자주 나오는 넷플릭스 드라마도 있었고, 유럽의 고성(古城) 여행 중에 영지에서 잡은 동물들을 박제해둔 것을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대체할 수 있는 사육동물이 있음에도 굳이 총으로 사냥하는 이유가 도망가는 동물을 맞혀 잡는 순간의 쾌감 때문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사냥으로 잡은 동물의 고기를 서양에서는 지비에(gibier·수렵육)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야생동물 고기는 질긴 데다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 잔뼈까지 많은 경우가 있어 매우 성가십니다. 그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지비에를 맛있게 조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것이 요리사나 주부들의 큰 숙제였지만, 이젠 사냥 자체가 드물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지비에 요리를 포기할 사람들이 절대 아니지요. 프랑스 마트에는 아예 지비에 코너가 따로 있고, 우리의 생닭처럼 정육 포장까지 해두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비둘기나 메추리 요리를 하는 곳이 있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비에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도쿄 변두리에는 지비에 전문 프렌치 레스토랑도 있고, 돗토리현에는 지비에 공급을 위한 사슴농장이 있어 도축과 포장을 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지비에의 ‘끝판왕’은 아무래도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요리가 아닐까요? 기회가 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두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남들은 희망봉 여행이나 골프, 와인 등에 관심을 두었지만 저는 엉뚱하게도 악어 고기 맛이 궁금했습니다. 결국 우범지대에 있는 지비에 식당을 찾아냈고, 마지못해 끌려온 일행은 저의 강권에 악어, 혹부리멧돼지 그리고 스프링복 스테이크 등을 주문했습니다. 실제 지비에 요리는 술 없이 먹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 애꿎은 와인이 많이 필요했지만, 이구동성으로 악어 넓적다리 스테이크를 최고로 꼽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토종 지비에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 큰집 사촌형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다 보면 길섶에서 신음하는 꿩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누가 몰래 콩이나 가시나무 열매 안에 ‘싸이나’(청산가리)를 넣고 뿌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에 불법적 취득 여부는 요령부득이었고, 혀를 차시는 큰어머니께서 닭볶음탕처럼 만들어주셨지만 맛보다 뼈가 많았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며칠 전, 교외로 바람 쐬러 나갔다가 토끼와 꿩을 한다는 간판을 보고 급히 핸들을 식당으로 틀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 소환에 애꿎은 꿩과 토끼가 희생되었지만 사육한 놈들이란 말에 그나마 죄책감이 덜하였다면 제가 위선적인 걸까요?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꽃피는산골국빈=경기 화성시 세자로406번길 14, 산토끼탕 5만 원, 꿩 샤부샤부 5만 원, 흑염소탕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