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주교. 동아일보 DB
1933년 서울에서 장면 전 총리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미국 메리놀대 인문학과를 졸업한 뒤 벨기에 루뱅대에서 철학박사,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사제품을 받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이던 서울대교구의 비서실장 겸 공보실장을 거쳐 1980년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 정릉과 세종로 천주교회 주임신부를 거치고 1994년 12월 주교품을 받은 뒤 춘천교구장을 지냈다. 2005년에는 함흥교구장 서리에 임명됐다. 2010년 1월 춘천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춘천 실레마을 공소에서 지냈다.
고인은 교황청 종교대화평의회 의원과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내면서 가톨릭의 심장부인 교황청과 대화가 가능한 외교적 채널이기도 했다. 특히 1984년 방한을 앞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장 주교에게 40여 차례나 한국어 수업을 받으며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장 주교는 언어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상 전반에 대한 예습 자료를 전달했다고 한다. 1984년 5월 3일 서울 김포공항에 내린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일성(一聲)으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는 논어 구절을 또렷한 한국어로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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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 주교는 생전 종교에 관계 없이 교류하는 열린 종교인이었다. 왼쪽부터 이창재 영화감독, 장 주교, 정목 스님. 동아일보 DB
고인은 고위 성직자이면서도 격식을 지키기보다는 열려 있고, 따뜻한 유머로 주변을 위로하는 품성의 소유자였다. 2014년 불교계 베스트셀러 저자인 정목 스님, 영화 ‘길 위에서’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정목 스님이 장 주교의 회색 옷을 언급하며 “절집의 큰 어른 스님 같다”고 하자 고인은 “오늘 스님들과 옷 색깔 좀 맞췄다”고 화답했다.
빈소는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8일 오전 10시 반 같은 장소에서 봉헌한다.
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