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8일 “예정처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여당 의원들이 공격하고,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분석을 강요하면 국회가 왜 필요하냐”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재정·조세 전문가로 한국조세연구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예정처가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노무현 정부 추산보다 과다 추계했다는 것과 내가 외부 정책토론회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국회 고위직을 모두 물갈이하려는데 내가 버티니까 그걸 구실로 강제 면직시켰다.” (예정처는 국가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 운용에 관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기 위해 만든 곳 아닌가.) “그러니 어이가 없다는 거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핵심 정책이었고 정부 추산으로만 약 45조 원이 드는 대사업이었다. 이런 국가사업을 예정처가 추계 분석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의뢰가 들어와서 한 거다. 안 하면 직무유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비용을 부풀렸다고 공격했다.”
―비용을 부풀렸다니?
“비용 추계는 여러 가정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럴 경우, 저럴 경우를 고려해 몇 가지 안이 나온다. 정부는 45조6000억 원, 예정처는 52조∼67조 원을 추계했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안으로 정부를 공격했다. 안 그래도 나를 쫓아내고 싶었는데 그걸 빌미 삼은 거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조사소위원회를 만들고 비용 부풀리기와 공문서 위조, 판공비 사용 내역, 채용 비리 여부까지 내 비리를 찾아내려고 탈탈 털었다.” (결과가?) “없다.” (없다니?) “원하는 걸 아무것도 찾지 못하니까 조사보고서도 못 만들고 흐지부지 끝났다.”
―조사위가 근거를 찾지 못했는데 국회의장이 어떻게 면직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나. 사유를 명기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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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회운영위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11명과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찬성으로 면직동의안을 통과시켰다.
2004년 11월 국회 기자실 출입을 제지당한 최광 예정처장이 복도에서 면직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당시 세계 경제 호황으로 다른 나라들은 활력을 띠고 있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 밑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참여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 전환을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열린우리당은 ‘최광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인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국회의장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 비난했다. 난 평소 우리도 미국 의회예산처(CBO) 같은 기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는데 마침 예정처가 생긴다고 하니 공개모집에 지원해 된 것뿐이다. 특정 정당의 추천을 받지도 않았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3차 추경의 문제점을 지적한 예정처를 성토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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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4대강 사업에 3조5000억 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정처가 환경부 예산 1조2873억 원 등 다른 부처에 숨겨진 4대강 예산을 찾아내면서 하루 만에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예정처는 그런 곳이다.
“초기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설립 당시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는 예정처장의 임기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법에서 빠졌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이 바뀌면 처장도 바뀌는 게 관례처럼 됐다. 역대 처장 8명 중 5명이 국회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인 점도 문제다. 3권 분립이라지만 국회 사무처는 여당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예정처에 사무처 인력이 많아지면 예정처가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를 하기 어렵다. 국회사무처와 예정처는 서로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인적 교류를 금지하는 게 바람직한데 직원들 인사는 물론이고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들이 아예 예정처장 자리를 차관 승진 개념으로 여긴다. 초기에 어렵게 뽑은 외부의 유능한 인재들이 대부분 떠난 이유기도 하다.”
―이번 추경도 그렇고 정부 예산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당신은 예산 규모 확대가 개인의 자유를 축소시킨다고 주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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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예산을 제대로 감시하는 게 민주화운동의 하나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래서 예산 감시가 그렇게 중요한데…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의 본질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지역구 사업비 밀어 넣는 것이 예산 편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여야는 행정부 견제보다 자기들끼리 견제가 우선이고, 특히 여당은 국회 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부를 감시하기보다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분석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추경 때도 보지 않았나.”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의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운용과 관련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고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3월 설립된 국회 내 기관. 국회의장 소속이지만 직무에 있어서는 법으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연구인력 등 현재 13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