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원칙론만, 여당은 돌격대 역할 분담 메시지 혼선 가중되면 대국민 신뢰 추락
정연욱 논설위원
그 예고편은 조국 사태였다.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조국의 퇴진을 거치면서 지향점은 흐지부지됐다. 실각한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으니 조국 수사에 나선 윤석열은 눈치 없는 행동을 한 셈이다. 더욱이 윤석열 검찰은 대통령 친구인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등 권력형 비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당과 친문 진영의 주공(主攻)이 윤석열 검찰에 맞춰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대통령 메시지는 액면이 아니라 이면의 속내를 눈치껏 읽어내야 한다는 학습효과를 남겼다.
“조급해서도 안 된다. 갈등과 합의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갈등 속에서 상생의 방법을 찾고, 불편함 속에서 편함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치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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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에서 강조된 갈등과 합의, 소수 존중,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는 현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원칙론만 역설하는 ‘굿 캅’, 여당과 친문 인사들은 ‘배드 캅’ 돌격대로 역할 분담을 한 것 같다. 대통령 메시지의 겉말과 속뜻은 달랐고, 여당은 속뜻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공수처 설치 당론에 다른 의견을 냈다가 징계를 당한 금태섭은 “활발한 토론과 비판 정신이 강점이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 어느 정당보다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던 분위기가 빛바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원칙론에 가까운 대통령 메시지 이면의 속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순진함도 탓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권 내부에선 시간에 쫓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022년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이렇다 할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한 시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에서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커질수록 거여의 폭주는 거칠 것이 없어지는 분위기다. 이럴수록 여권이 전유물로 삼았던 정의와 공정, 민주의 가치가 퇴색되는 역설이 벌어진다. 지금의 여당이 대척점에 세워 놓은 전두환 정권이 만든 집권 여당도 당명만큼은 ‘민주정의당’이었다. 메시지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면 정권과 민심의 간극도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