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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칭찬’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Monday DBR]

입력 | 2020-05-04 03:00:00


세상에서 승리한 뒤 으스대는 것만큼 달콤하고 짭조름한 일이 또 있을까.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이 명절에 귀향할 적엔 비단옷을 입는다(錦衣還鄕·금의환향). 그리고 가능하면 옛 친구들과 친척들이 옷을 잘 볼 수 있도록 낮 시간에 돌아다닌다. 밤에 돌아다닐 거라면 비단옷은 입어 무엇하겠나(錦衣夜行·금의야행). 값비싼 차를 구입한 뒤에 딱히 긴요한 볼일이 없을 때에도 슬그머니 시내에 몰고 나가는 것은 자동차가 비쌀수록 이른바 ‘하차감’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랑이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안 하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꼭 해야겠거든 자화자찬(自畵自讚)만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자화자찬이란 무엇인가? 이 사자성어에 대한 이야기는 무려 ‘미라(mummy)’부터 시작한다.

추모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는 행위다. 하지만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상상력만 발휘해서 누군가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 때 종종 망자의 유품이나 영정 사진을 벌여 놓는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망자의 신체다. 그래서 과거 중국의 불교도들은 고승이 입적하면 미라를 제작했다. 내장을 제거한 시신의 겉면을 두껍게 옻칠해 밀봉하는 방식이었다. 스님의 미라들은 사찰의 주요 의례에 직접 출석해 망자가 생전에 맡아 보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듯 고승의 미라를 의례에 사용하는 문화도 시간이 흘러 변했다. 미라는 제작하기 어렵고 비쌌을뿐더러 자리도 많이 차지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초상화다. 화공(畵工)을 불러 입적을 앞둔 스님의 초상화를 그려서 벽에 걸어 두니 미라보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송나라(960∼1276)가 들어서면서 조정이 주지 스님 임명권을 갖게 됐다. 정해진 임기를 마친 스님들은 조정의 명에 따라 다른 절로 떠나야 했다. 이렇게 되자 남아 있는 제자들과 신도들은 먼 훗날 주지 스님이 돌아가신 뒤를 생각해 가능하면 현직에 있는 동안 영정으로 쓸 초상화를 미리 그려 놓으려 했다. 그런데 이런 풍습이 관습이 되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본래 미라를 대신한 영정 사진임을 망각하게 됐고, 꼭 한 장만 그려서 보관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신도들은 스님의 초상화를 판각해 수백 장씩 찍어냈고 이 중 일부는 남들과는 다른 ‘명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초상화에 친필 사인을 부탁했다.

찬(讚)은 일종의 문학 장르로, 옛사람의 초상화의 한구석에다 그의 덕성, 업적 등을 찬양하는 내용의 시구를 써 넣은 뒤 서명하고 도장을 찍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초상화에 찬을 써주는 것이야 흔한 일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 아낌없이 칭찬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초상화에 찬을 쓰는 것은 실로 멋쩍은 일이다. 자신을 그린 초상화에 찬을 써주십사 찾아오는 신도들의 부탁을 받고 쑥스러움을 견디다 못한 주지 스님들은 결국 기존의 장르를 비틀어서 자찬(自讚), 즉 ‘셀프 칭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찬과 달리 자찬은 스스로를 최대한 깎아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식의 자찬은 송대에 들어 폭증했는데 어떤 유명한 스님의 경우는 현재 남아 있는 자찬만 수백 편에 달한다. 이렇게 자찬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었다. 자찬의 글은 스님 본인이 써도 그림을 스스로 그리는 자화(自畵)는 금기였다.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덕을 사모한 다른 이들이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가져와 자찬을 부탁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림까지 그린다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너무 노골적으로 자랑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큰 성공을 거두면 흔히들 영원히 썩지 않을 거라(不朽·불후) 말하지만 사실은 썩는다. 썩는 물건을 자화자찬으로 방부 처리하는 것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깔끔하게 매장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안동섭 중국 후난대 악록서원 조교수 dongsob@unix.ox.ac.uk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95호에 실린 “자화자찬의 기술…이겼다고 도 넘지 말자”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