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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UI·UX 디자인 트렌드

입력 | 2020-04-23 03:00:00

가장 심플한 것이 가장 진화한 것이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유독 편리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단순히 사용자 편의를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의 행동이나 습관, 더 나아가 경험을 통한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제품이 설계됐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품에 대해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이 성공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류한영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전략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면 소비자가 생활습관을 바꿀 만큼 영향을 미친다”며 “이를 위해선 많은 정보를 나열하지 말고 핵심을 제시하고, 사용자 관점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택은 간단하게, 소통은 일상 언어로


아날로그 디자인에서 디지털 디자인으로 바뀌면서 소비자 중심의 소통 노력이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자동차의 계기판이다. 류 교수는 “디지털 계기판은 운전하면서 봐야 하는 만큼 복잡한 정보를 전달하면 안 된다”며 “화살표처럼 순간적으로 이해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시계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시계가 ‘읽는’ 도구였다면 디지털시계는 숫자를 ‘보는’ 방식으로 바꿔 핵심 정보만을 전달한다.

이런 변화는 가전제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출시한 ‘삼성 그랑데AI’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세탁기 겸 건조기로, 컨트롤 패널에 사용자의 사용습관을 기억했다가 필요한 정보만 보여준다. 임경애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UX 담당 상무는 “지금까지의 세탁기와 건조기 패널에는 제조사가 자랑하고 싶은 모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코스나 쾌속 코스 등은 전혀 쓰이지 않는 정보인데도 늘 노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임 상무는 “소비자 조사 결과, 세탁기와 건조기의 모든 기능을 다 쓰기보다 주로 3, 4가지 코스만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를 반영한 신제품은 사용자가 고민해 선택하는 과정을 확 줄여줌으로써 세탁이 번거롭다는 인식을 바꾸고 세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표현 방식도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로, 내용 전달은 가급적 직접적으로 바꿨다. 임 상무는 “가전제품을 쓰면서 가장 답답한 때가 사용자로서는 알기 어려운 에러 코드로 표시되는 경우였다”며 “이를 대화하듯, 우리가 평소 쓰는 표현으로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문을 닫고 다시 시작하세요’라든가 ‘필터 청소를 진행하세요’와 같이 듣자마자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지시문이 만들어졌다. ‘세제를 투입 중입니다’처럼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먼지털기 코스’, 흐린 날은 ‘흐린날 코스’를 권유한다.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그랑데 AI가 장착한 UI·UX 디자인의 또 다른 비밀은 소비자의 취향과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는 점이다. 임 상무는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 옷을 자주 삶고 혼자 사는 회사원은 정장을 매일 입기 때문에 셔츠를 자주 세탁한다”며 이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랑데 AI는 사용자의 세탁과 건조 습관을 기억하고 자주 사용하는 코스와 옵션을 우선 순위로 추천해주는 ‘AI 습관기억’ 기능이 있다. 이를 통해 패널에는 이용자에게 자주 사용하는 대표 코스만 간추려 간단명료하게 표시한다.

그랑데 AI의 이 같은 변화와 맞춤형 세탁 서비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조희선 신한대 공간디자인학과 교수는 “매번 일일이 세탁코스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쓸수록 나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와이셔츠를 매일 갈아입는 사람, 매일 땀 흘리는 실내 운동을 즐기는 사람, 아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등은 주로 이용하는 세탁 코스가 다를 수밖에 없는 데, 개인 맞춤형 세탁 서비스는 새로운 UI·UX 디자인이라는 평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