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연구’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 아우내장터시위 ‘범죄인명부’ 찾아 “용두리 주민들, 항의하다 곤장도” 재판기록 토대 당시 상황 유추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는 “유관순 리더십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임 씨가 지난해 4월 1일 충남 천안의 백석대에서 열린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토론에 나선 모습. 백석대 제공
○ “아우내장터 시위대 12명 태형 받아”
당시 발포로 유 열사의 아버지인 유중권 등 2명이 총에 맞아 결국 사망했다. 이어 2시간 뒤 추가로 지원 나온 천안 헌병대 발포로 이들 2명을 포함해 모두 19명이 숨지고 3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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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집에는 다른 3·1운동 기록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담겨 있다. 당시 주재소에 몰려간 사람들 중 12명이 즉결처분으로 태형(笞刑·곤장형)을 받았다는 기록이다. 향토사학자 임명순 씨가 3·1운동 100주년인 지난해 천안시의 의뢰로 지역독립만세운동을 조사하다 병천면주민센터에 보관돼 있던 아우내장터 시위 참가자 26명의 ‘범죄인명부’를 찾아내 알려졌다.
○ ‘유관순 리더십’ 연구 계기될 듯
임 씨는 이 밖에도 잘못 알려진 유 열사의 탄생 연도와 생일, 순국일, 공주지방법원 판결 형량 등을 바로잡았고 유 열사가 항소를 포기한 사실을 밝혀낸 유관순 연구자다. 신원조회용으로 읍면동에서 보관해온 범죄인명부는 오래되면 폐기하지만 용두리의 기록은 이 마을이 1973년 동면에서 병천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보관기간이 새로 시작돼 폐기를 면할 수 있었다.
범죄인명부에 따르면 태형을 받은 12명 가운데 9명은 유 열사가 살았던 용두리 주민이고, 3명은 인근 수신면 백자리 주민이다. 이들은 곤장 90∼60대를 선고받았는데 그 가운데 용두리 주민 8명이 최고형(90대)을 받았다. 임 씨는 이날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9명이나 됐는데 유독 용두리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다가 혹독한 태형을 많이 받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두리 주민들의 태형 기록은 유중권의 마을 내 신망과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며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런저런 증언을 종합할 때 유중권이 광복 전까지 농촌 마을에 확산돼 있던 두레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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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