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기술/벨 보그스 지음·이경아 옮김/400쪽·1만6800원·책읽는수요일
난임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 입양 제도, 의학 기술, 가족의 개념을 두루 살피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사안으로 확장될 수 있다. 동아일보DB
아기를 열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중 스칸디나비아에서 베이비 피버라는 말을 쓴다. 헛것을 보기도 하고 통증도 느낀다. 핀란드의 가족사회학자 안나 로트키르흐는 이 현상을 연구하며 다양한 여성이 느낀 경험을 조사했는데 응답자 중 다수가 ‘아기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여러 고충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한 순간,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출산 육아의 기쁨과 고충을 논하는 숱한 책이 쏟아지는 와중에 이 책은 소설가인 저자가 실제 난임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기약 없는 긴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임의 상황에 처한 다른 이들처럼 저자 역시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한 여성의 임신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가정은, 난임을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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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포기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의료기술 발달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결국 막대한 비용 때문에, 그럼에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으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약물과 주사 때문에 망설이던 체외수정을 결심한다. 난임 부부가 기대는 마지막 보루인 체외수정은 산업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창조 섭리의 위협’ ‘실험실 아기’ 등으로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번식을 위해 울어대는 매미소리조차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 그는 또 다른 기다림이 될 최후의 과정을 밟는다.
난임의 세밀한 기록 속에서 던져진 질문과 인터뷰는 생명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그를 둘러싼 이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을 돌아보게 한다. 난임 치료비용은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저자는 인종이나 지위, 재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이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난임 치료 혜택이 확대돼야 함을 함께 피력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