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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의 여왕 김해란 “시즌, 이대로 끝날까 무서워요”

입력 | 2020-03-18 03:00:00

흥국생명 베테랑 리베로 김해란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너무 아쉽죠.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착잡했다.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의 베테랑 리베로 김해란(36)은 요새 어느 때보다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흥국생명과 3년 계약이 끝나는 김해란은 현재 은퇴 여부를 고심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V리그가 시즌 도중 중단됐고 선수단도 예방 차원에서 외부 출입 없이 숙소에만 머무르고 있다. 만약 V리그가 재개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코트에 서지 못한 채 떠날지도 모른다. 2013년 결혼한 김해란은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친정 엄마는 ‘더 이상 네가 아파하는 걸 못 보겠다’며 무조건 그만두라고 한다. 매일매일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처음으로 통합우승을 맛본 김해란에게 이번 시즌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시즌 전 우승 후보로 지목되면서 선수들이 부담을 느꼈는지 우리 플레이가 잘 안 됐다. 최근에도 에이스 재영이가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팀이 상승세를 타나 싶더니 다시 리그가 중단됐다. 여러모로 잘 안 풀리는 시즌이다.” 하지만 우승에 대한 간절함은 더 커졌다. 그는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막상 우승을 하고도 멍했던 것 같다. 분위기는 자신 있다. 이번만큼은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현재 여자부 3위다.

V리그 출범 원년(2005년)부터 코트를 지켜온 그에게 스스로 생각해도 잘한 일을 묻자 “고지식하게 원리 원칙대로 선수생활을 해온 것과 흥국생명을 택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해란은 한국도로공사와 KGC인삼공사를 거쳐 2017년 자유계약선수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내가 팀을 직접 선택한 건 흥국생명이 처음이었다. 나는 늘 후배들에게 ‘우리 팀만 한 팀 없다’고 말한다. 언제 하더라도 나는 꼭 흥국생명에서 은퇴하고 여기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V리그 재개가 불투명해지면서 흥국생명과의 3년 계약 마지막 시즌을 맞은 김해란의 은퇴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의 모바일 메신저 소개 문구는 ‘돌아오지 않을 하루하루를 즐겁게’다.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김해란은 남녀를 통틀어 V리그 통산 첫 1만 디그 성공을 노리고 있어 선수 생활 연장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디그 성공 9819개를 기록 중인 그가 다음 시즌도 뛸 경우 대기록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이정표는 투혼의 결실이다. 그는 V리그에서 유일하게 1만 번 이상(디그 시도 1만1322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김해란은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옆에서 알려줘서 알 정도로 기록에 무딘 편”이라면서도 “리시브는 여전히 스트레스인데 디그는 아직도 할 때마다 재밌고 좋다”며 디그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디그여왕(김해란의 별명)은 아직도 팬들과 작별할 준비가 안 된 듯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