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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을 피운다는 것[서광원의 자연과 삶]〈17〉

입력 | 2020-03-16 03:00:00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요동치는 세상에도 봄은 온다.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니 봄은 봄이다. 그나저나 겨울이 채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듯 재빠르게 꽃을 피울까?

우리 눈에는 봄이 오면 저절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 같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듯 저절로 또한 없다. 사실 식물들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고 성급하게 꽃을 내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망설이거나 여유를 부리면 자칫 때를 놓칠 수도 있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요즘 풀밭에 가보면 눈곱만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벌써 활짝 핀 꽃들이 있다. 겨우내 한파에 시달렸던 냉이꽃이다. 알다시피 냉이는 겨울이 되어도 다른 식물과 달리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틴다. 온 몸을 땅바닥에 착 붙인 채 온 겨울을 떨며 보낸다. 그냥 땅속으로 들어가면 쉬울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할까. 그래야 요즘 같은 봄이 왔을 때 재빨리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삶이 있고 경쟁이 있는데 이런 경쟁을 피하는 전략이다. 반면 봄이면 세상을 노랗게 만드는 개나리는 잎보다 꽃을 먼저 내는데 이 역발상 역시 짝짓기(수분)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들여야 할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꽃들은 누구를 위해 필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우리를 위해? 아니다. 짝짓기를 대신해 주는 벌과 나비 같은 중매쟁이를 위해 핀다. 여기 맛있는 꽃가루와 꿀이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하는 표지가 바로 꽃이다. 당연히 이 파트너들의 활동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 요즘 같은 이른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 같은 노란 꽃은 대체로 꿀벌보다는 꿀벌과 비슷하게 생긴 등에에게 손짓한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초봄부터 활동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반면 꿀벌을 위한 꽃들은 제비꽃처럼 보랏빛이 많다. 좀더 늦게 피는 빨간 꽃들은 새를 위한 것이다. 곤충은 빨간색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마치 고객 맞춤 서비스를 하듯 파트너들이 활동하는 시기와 그들이 좋아하는 색깔을 구비한다.

사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건 대부분의 꽃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한다는 것이다. 봄이 왔을 때 준비하면 늦으니 상황이 가장 좋을 때, 그러니까 지난해 봄이나 여름처럼 모든 것이 풍성할 때 이듬해 필요한 잎과 꽃을 미리 만들어 둔다. 겨울에 나무에 달린 겨울눈을 칼로 잘라보면 알 수 있다. 마치 잘 개어 놓은 옷처럼 잎과 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꽃들은 이런 보이지 않은 수많은 노력의 결과다. 보면 볼수록 우리가 우리 삶을 아름답게 꽃 피우려는 것과 어찌 이렇듯 같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원리는 어디서나 같은 듯하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