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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뜨는 건 운칠기삼… ‘극한직업’ 성공 비결은 ‘인복’

입력 | 2020-03-13 03:00:00

[엔터 View]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11일 만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 뒤로 영화 ‘극한직업’ 포스터가 놓여 있다. 김 대표는“유머와 감동이 섞인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운이 좋아서 거둔 성과라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1600만 관객. 대한민국 국민의 3분의 1이 본 영화 ‘극한직업’(2019년)을 만든 영화 제작사 어바웃필름 김성환 대표(46)의 말이다. 극한직업은 한국 영화 중 ‘명량’(1761만 명)에 이어 역대 관객 수 2위, 매출액 1위를 기록했다.

서울 서초구 어바웃필름 사무실에서 11일 김 대표를 만났다.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좋은 스태프와 배우를 만난 운 덕분”이라고 했지만 그는 13년간 아이픽처스, 바른손, 디씨지플러스 등 영화 투자·제작사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다. 첫 회사였던 아이픽처스에서 ‘살인의 추억’과 ‘장화, 홍련’ 제작 지원을 하며 실무를 익혔다. 디씨지플러스에서 ‘과속스캔들’(2008년), ‘최종병기 활’(2011년)의 제작과 투자를 진행했다.

그는 영화계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제작사와 투자사의 차이도 모르던 ‘초짜’였다. 영화 보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외화를 즐겨 봤지만 그는 한국 영화에 더 끌리긴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접속’을 보고 ‘영화란 참 좋은 것’이라고 느꼈다. “분쟁을 싫어한다”는 그는 영화업계가 거칠고 험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감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 15초는 너무 짧다는 갈증을 느꼈어요. 채용 공고가 뜬 영화 투자사들에 무작정 지원서를 넣었죠. 여러 군데 합격했는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투자한 회사를 선택했어요. 아이픽처스였죠.”

김 대표는 ‘유머와 감동이 섞인 영화’에 투자하며 자신만의 색을 구축했다. 그의 강점이 드러난 분야는 코미디다. 디씨지플러스로 옮긴 직후 투자한 ‘무방비도시’, ‘비스티 보이즈’ 등이 연이어 실패하며 회사가 기울던 때 제작과 투자를 한 과속스캔들이 824만 관객을 모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이듬해 투자한 ‘7급 공무원’(2009년)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았다.

“사람 냄새나는, 유머와 따뜻함이 공존하는 영화가 좋아요. 시나리오도 캐릭터 하나하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것들에 끌려요.”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 ‘해치지않아’의 손재곤 감독 등 좋아하는 감독을 이야기하던 그는 특히 ‘사람 냄새’ 나는 감독으로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을 꼽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을 때 그가 뽑았던 시나리오가 두 번이나 이 감독의 것이었다. 그중 한 편은 이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인 ‘스물’(2015년)이다.

“이 감독은 무명의 신인 작가였고, 심사도 이름을 가리고 진행했어요. 이 감독이 가진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싶어 2014년 어바웃필름을 차린 김 대표는 성공과 실패를 두루 맛봤다. ‘도리화가’(2015년)와 ‘올레’(2016년)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주특기인 코미디 극한직업으로 돈을 벌기 전까지는 사무실을 빌릴 돈이 없어서 카페로 출근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겪으니 영화가 뜨는 건 ‘운칠기삼’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반전을 만들어내는 김 대표의 ‘운’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성품에서 비롯됐다. 흥행하지 못한 작품에서 만난 제작진, 배우들과도 인연을 이어가며 만회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과속스캔들 각색을 맡아 첫 인연을 맺은 이병헌 감독과 영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친구로 지내다 극한직업 감독을 맡겼다. 올레의 주연 신하균, ‘불신지옥’(2009년)과 도리화가에서 실패를 맛본 배우 류승룡은 “한 번만 더 해보자”는 김 대표의 부탁에 흔쾌히 극한직업에 출연해 ‘천만 배우’가 됐다. 인터뷰 중간중간 “지지난 주에 극한직업 팀과 회식을 했다”, “올레 때 투자했던 대표분이 이따 놀러온다”는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경찰이 마약 밀매단을 잡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하는 내용을 그린 ‘극한직업’. 어바웃필름 제공

김 대표는 올해 하반기 개봉하는 코믹액션영화 ‘차인표’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10년 지기 김동규 감독의 ‘입봉’(감독 데뷔)은 꼭 자신이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김 대표가 제작을 맡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무급으로 각색해 줬다. 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차인표는 투자금을 10억 원 남짓 모았다. 그 외 개런티, 인건비 등은 김 대표가 자비로 메웠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광고회사에 다닐 때 읽은 책에서 ‘광고기획자가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박혔어요. 지금도 이 원칙만큼은 지키려고 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