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지음/284쪽·1만3500원·문학동네
소설가 권여선의 신작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단절된 관계에서 소통하지 못하는 말에 천착한 단편들을 모았다. 이들 작품에서 인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아 ‘머나먼 타인처럼’ 느껴진다.(‘희박한 마음’) 그들은 부재하는 엄마(아내)로 인해 반목하는 부녀(‘모르는 영역’)이거나, 언니의 저금과 대출받은 돈을 들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갈라진 이부(異父) 자매(‘손톱’)이거나,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반신불수 엄마를 위해 직장에서의 부조리함을 참아내는 기간제 교사인 딸(‘너머’)이다.
그 말은 ‘상의 한마디 없이’ 내리꽂히는 그 무엇이어서 ‘상의도 아니고 대화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끼게 된다. 말의 일방통행 속에서 인물들은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이라며 악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 ‘대꾸하려다 말았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돼버린다.
저자는 소설가 김애란이 표사(表辭)에서 말하듯 ‘비정해서 공정한 눈’으로 인물들을 훑는다. 희망은 희미할 뿐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을 ‘바닥을 쳤지만 진흙바닥이었군’이라는 자조로 받아들일지,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의지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