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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학과 정치학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입력 | 2020-02-20 14:00:00


공중보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던 15세기 유럽에서, 지배계급은 이따금 찾아오는 전염병에 대한 방역을 위해 피지배층을 정치적으로 강력히 통제했다. 치명률이 85%까지 달하던 시대. 전염병 창궐기간 동안 권력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한다는 간섭주의 방역 정책은 일견 효과적일 것 같았다. 가장 강경했던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보건당국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세계사 속 질병의 영향을 연구한 역사학자 셸던 와츠의 ‘전염병과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간섭주의 정책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검역이 시행될 때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쫓겨났고, 시장거래는 중단됐다. 전염병 희생자가 발생한 가옥은 전면 폐쇄되었다. 특히 당국이 장례식을 금지한 데 대해 시민들은 극도로 분개했다. 결국 곳곳에 암시장이 형성되었고 감염자의 가족들은 밤에 외출해 생계를 꾸렸다. 장례식 통제는 정말 완벽하게 실패했다.

결국 방역체계는 무너졌고, 통제방식이 특히 권위적이었던 피렌체는 전염병 피해가 너무 커서 19세기까지도 15세기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했다. 와츠는 냉정하게 쓰고 있다. “전염병 시행 법규가 적용된 어느 곳에서나 무언의 거부 반응과 공공연한 저항이 있었다. 사회적 문제 발생은 전염병 때문인 경우보다는 전염병 법규의 시행에 의한 것이었다.” 요컨대 질병을 통제하기 위해 사회적 통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주민들의 비협조로 방역에 구멍이 나서 효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과도한 검역은 역설적 효과를 내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수도 베이징의 한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들로부터 생필품 공급 및 방역 상황 등을 듣고 있다. 베이징=신화 AP 뉴시스



현재 전염병 국면을 맞아 중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에서는 “감시와 솎아내기, 강력한 경고로 예방과 통제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평소에 중국은 반체제 인사만 관리했으나, 현재는 모든 인민들을 감시·검열·통제하라는 확대된 지시사항이 100만의 지방공무원들에게 내려졌다. 우한 지역에 다녀온 사람들의 명단이 주민번호까지 포함되어 돌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경찰 등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온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우한과 그 주변지역은 이미 완전히 고립됐다. 전염병을 피해 우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일반 호텔에서 묵지 못하고 닭장 같은 호스텔에 ‘감금’된다.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은 위신이 깎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감염자·사망자수 등 코로나-19의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관련 내용을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도 폐쇄됐다. 코로나19의 실태를 보도하려고 한 ‘시민기자’들은 연이어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당국의 대응 실패가 언론 통제에서 기인했다고 밝힌 쉬장룬 칭화대 교수도 사라져 버렸다.

15세기 유럽이 예방의학의 무지에서 강력한 사회통제를 실시했다면, 중국은 이에 더하여 정치적인 이유까지도 안고 있다. 현재 중국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신장 인권 문제와 홍콩 민주화 운동은 대국의 단합을 해치는 심각한 골칫거리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성장률도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1당 독재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번영의 성과까지도 흔들리는 상황에 발생한 급성전염병 위기에서, 중국공산당이 택한 것은 강력한 빅브라더식 사회 통제였다.

전통적으로 공산당은, 위기의 국면에서 상황을 개선시키는 동시에 국내외적 체면을 세우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해 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두 번째 목표, 국내외적 위신을 세워 정권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독재를 펴고 있는 공산당에게 더 중요한 가치이다. 이번에도 역시 정치적 통제가 역학적 예방에 우선하는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처음 외부에 알렸다가 괴담 유포자로 몰렸던 안과 의사 리원량 씨. 뉴시스



그러나 최대 난점은, 이러한 조치가 급박한 국면에서는 상충관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산당이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자료 공시를 늦추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해 더 많은 감염자수가 발생할 수 있다. 정치를 위해서 보건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초기 대처가 완벽히 실패하면서 두 마리 토끼는 정반대 방향으로 뛰게 됐다. 말하자면 중국은 ‘역학과 정치학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15세기 유럽과 마찬가지로 21세기 중국에서도, 강력한 사회통제조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염 추이는 세계인들에게 지수함수의 형태를 알려주고 있을 지경이다. 이미 2월 10일에 중국에서 감염자수 4만 명, 사망자수 900명을 넘어서서 2003년의 사스(SARS)를 압도했다. 19일 결국 사망자의 수는 2000명을 돌파해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정부가 주민들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초기대응에 실패해 인민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작년 12월에 이미 코로나19 감염자는 100명에 달했으나, 보건당국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후베이 성 전역으로의 확산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중국민을 인터뷰한 외신들의 보도를 보면 ‘개인정보 유출로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환자들은 범죄자들이 아니다’ 등 아우성 투성이다. 이에 더하여 중국 정부는 가용자원을 통제에 집중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위생에는 정작 신경쓰지 못하는 듯하다.

이 사실을 중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우한 탈출 주민들의 통제소로 사용되고 있는 호스텔은, 공기 전염의 예방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감염을 막기 위해 통제소에 억류된 사람들이 오히려 감염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주먹구구식 상황에서는 물리적인 예방의 효과성도 떨어질뿐더러, 주민들을 방역체계 내로 끌어들여 협력시키는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당국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주민들 스스로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형태로서 ‘방역의 파편화’가 발생하게 된다. 공중보건은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는데, 컨트롤타워가 신뢰를 잃으면 집단면역 등을 통한 예방의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방역체계의 실패로 중국 내 코로나19의 감염자수가 더 증가하면, 공산당은 더 큰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부 위기를 완화시키려 사회적 통제를 더 강화하게 될 것인데, 이로 인하여 다시 역학적 조치들이 실패해 전염병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역학과 정치학의 딜레마는, 보건도 정치도 위기에 처하게 하는 ‘파멸 장치(doomsday machine)’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중국 국·내외 상황들도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비판에 대한 방패로 지방정부를 희생시키고 있다. 공산당은 방역에 실패한 지방 관리들을 해임하고 있으며, 전염병 창궐을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을 체포한 우한시 당국을 공개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중앙과 지방의 협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하게 우려된다. 특히 방역체계는 중앙-지방-민간의 긴밀한 협력이 생명인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희생양으로 삼게 된다면 지방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방정부의 행동반경 약화로 연결되어 각 지역에 적합한 대책을 펴는 정책적 유연성까지 상실하게 된다. 요컨대 중앙과 지방이 라이벌 관계가 되어 방역의 주요한 한 축이 끊어진다. 결국 인민과 중앙, 중앙과 지방이 서로 불신하는 보건체제의 완전한 형해화(形骸化)가 이루어질 수 있다.

체면을 지키려는 공산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판의 화살은 중국 중앙정부로 향하고 있다. 시민들은 점차 노골적으로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관영TV로 보도되지 않은 정보를 폭로하는 내용을 유튜브 채널로 방송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시민기자 '천추스'는 “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것은 폭정”이라며 “공산당은 두렵지 않다”는 내용을 전달했고, ‘팡빈’은 “모든 시민이 저항한다. 인민에게 권력을 돌려줘라”라며 공산당의 독재를 맹비난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정책적 신뢰를 잃은 데 더해서 정치적인 저항에까지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하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AP 뉴시스



세계보건기구(WHO)의 대응도 심각한 문제다. WHO는 중국의 조치들을 칭찬받을 일이라고 발표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주 들어 감염자와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도 “중국의 신규 확진자는 감소하는 추세”라며 “대유행 용어 사용을 조심하라”고 밝혔다. 이러한 친중적 행보는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선거운동에 중국이 금전적 후원을 했고, WHO 역시 중국의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WHO 역시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우울하게도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조는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방역체계를 확보하고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견지에서 교육부가 주도하고 각 대학들이 결정한 개강 연기는 지혜로운 대처라고 평가할 만하다. 한편 코로나19의 전파 국면이 심각하여 이보다 더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8일 대한의사협회는 중국 전역으로 입국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정부가 고민해 보고, 해야 한다면 해야 하고, 안 해도 된다면 안 해도 좋다.

그 대신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국민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득하라. 특히 중국 출입국 문제와 관련해 최근까지의 정부 해명을 보면,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기보다는 ‘검토해보니 필요없다’ 식의 뭉뚱그리는 답변을 내놓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 15세기 유럽도, 지금의 중국도 신뢰가 무너지니 방역체계가 무너졌다. 국민들이 보건당국에 자발적으로 동원될 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이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이 정부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