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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위대한 유산[오늘과 내일/김종석]

입력 | 2020-02-01 03:00:00

불멸의 전설이 남긴 열정과 사랑
“나누지 않으면 위대함도 의미 없어”




김종석 스포츠부장

아빠의 왼팔에 폭 안긴 두 살배기 소녀의 표정은 해맑기만 했다. 10여 년 전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안방 스테이플스센터 지하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코비 브라이언트와 딸 지아나였다. 정장에 보라색 넥타이를 맨 아빠와 흰색 원피스로 멋을 낸 딸은 파티라도 참석한 듯 보였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산의 아픔 끝에 얻은 둘째 딸 지아나가 복덩이였다.

부녀 앞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어린 딸이 칭얼거리자 아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체육관 밖에 대기 중이던 흰색 레인지로버에 딸을 태우고 직접 차를 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묵은 기억을 소환한 것은 며칠 전 접한 이들 부녀의 비극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헬기를 타고 가다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농구 경기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아빠는 42세, 딸은 14세.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뒤를 이어 농구공을 잡고 프로선수를 향해 가던 딸을 누구보다 아꼈다. 부녀의 짧은 동행은 예정된 목적지가 아닌 천상의 코트로 이어졌다.

20년 동안 LA 레이커스에서만 뛴 브라이언트는 지극한 가족 사랑으로 유명하다. 선수 시절 출퇴근 때 헬기를 타게 된 것도 LA의 극심한 교통지옥을 피해 자기 시간을 가지려는 간절함에서 비롯됐다. 그래야 아이 학예회도 가보고, 개인 운동도 더 할 수 있다던 가장이었다.

코비라는 이름은 농구 선수 출신 아버지가 즐기던 와규(쇠고기)로 유명한 일본 도시 고베에서 따왔다. 이탈리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 유창한 이탈리아어 실력을 지녔다. 멕시코계인 부인 바네사의 영향으로 라틴계 이민자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 세계를 돌며 글로벌 농구 전도사를 자처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도 여러 번 찾은 브라이언트를 취재한 적이 있다. 고교생들의 어설픈 수비에 고함까지 칠 만큼 진지했다.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왕복 달리기를 할 때는 전력을 다했다. 매일 바스켓에 1000개를 넣어야만 훈련을 마쳤다는 얘기에 참가자들은 경의를 표했다. 트위터 팔로어만 1500만 명인 브라이언트는 ‘남과 나누지 않는 위대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딸을 가르칠 때나 머나먼 한국의 꿈나무를 한 수 지도할 때나 한결같았다.

고졸 신화의 주인공인 그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저명인사들과 토론을 즐긴 학구파였다. 2016년 은퇴 후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분짜리 ‘농구에게’의 제작자로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상까지 받았다. 스포츠뿐 아니라 문화, 경제 등 코트 밖 제2의 인생에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브라이언트는 좌절에 빠졌을 때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윈프리는 ‘새로운 날을 만나기 위해 매일 아침 커튼을 열 때마다 내 마음은 감사함으로 부푼다. 한 번 더 오늘을 살 기회를 얻은 것이 참으로 고맙다’고 했다.

오전 5시면 몸을 풀었던 브라이언트도 이 말을 깊이 새겼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등번호 ‘24’는 소중한 하루 24시간을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사고 당일에도 오전 7시 미사를 봤다. NBA 5회 우승, 올스타 18회, 올림픽 금메달 2개, 선수 시절 수입만 약 8000억 원….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물이다.

이제 브라이언트는 감사하며 기다렸던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열정은 많은 사람들을 깨우는 소중한 울림이 되고 있다. 1인자를 꿈꿨던 그가 눈을 감은 뒤 불멸의 전설이 됐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