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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이 과학의 시작[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0-01-31 03:00:00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방학이 시작된 지 어느덧 반이 지났다. 마음이 바쁘다. 그동안 미뤄뒀던 연구 프로젝트를 서랍에서 꺼내 다시 시작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강의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차분히 연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그렇지만, 쉬운 문제는 남아 있지 않고 해결되지 못한 어려운 문제들만 남아 있다. 방학 때마다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마치지 못하고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들. 이번 방학에는 해치워야지!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서는 내 역할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학생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말 그대로 모두 손발이 맞아야 한다. 단순히 내가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늦어지더라도 “교수님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되나요?” “교수님 왜 이렇게 되죠?” 하고 문제를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과학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왜 그런지를 설명해가는 여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탄생시킨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스승인 닐스 보어의 논쟁은 ‘상보성 이론’으로 발전했다. 상보성 이론은 동시에 한 물체가 파동으로 행동하는 것과 입자로 행동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지만, 그 물체의 성질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물체가 입자로서 행동하느냐, 파동으로서 행동하느냐는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 개념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두 과학자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과학자로서. 그 논쟁의 결과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이를 확률적으로 해석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보어 자신의 상보성 원리가 통합된다. 그리고 이 이론은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두 과학자로서의 격렬한 토론이 없었다면 이런 양자역학의 발전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보어는 상보성 이론으로 아인슈타인과도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틀리지는 않지만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설명, 즉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모두 아우르는 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와 논쟁하는 과정에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우주의 법칙을 우연에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양자론에 만족하지 않고, 프린스턴대에서 보리스 포돌스키와 네이선 로젠과 함께 다른 이론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 이론은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EPR 역설’이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대립된 의견이나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완성되고 발전했다. 이런 논리가 단지 과학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이번 방학에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깔끔히 끝내서 논문으로 발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이 ‘발전적 대안’을 가지고 더없이 가혹한 질문으로 나를 괴롭혀줬으면 좋겠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