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비즈]허정무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부담감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룬다”는 하소연부터 했다. 한국 프로축구의 변화를 선도할 역할 모델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내 “신나는 축구로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명랑하고 재밌는 축구로 팬들에게 다가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3년 안에 구단이 가야 할 가시적인 방향이 나올 것이고 5년이면 구단 예산의 약 30∼50%는 벌 수 있다는 각오로 수익 개선에 나서겠다”고도 말했다. 축구단이 모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100%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 수익을 내야 하고, 승패도 중요하지만 재밌는 축구로 팬들이 사랑하는 구단을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팬이 없는 구단은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허정무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은 축구인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해 한국 프로축구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은퇴 이후에도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전 하나시티즌 제공
선수 및 감독, 행정가로 유럽과 일본, 미국의 축구 시장까지 두루 돌아본 허 이사장은 최근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직업체험관인 ‘키자니아’를 찾았다. 아이들이 비행사, 셰프 등 수십 가지 직업을 체험하는 곳으로, 연간 입장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 그는 아이들 체험을 위해 부모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축구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오게 하는 축구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은 한때 ‘축구 특별시’로 불렸다. 1997년 창단한 대전은 2003년 18승 11무 15패로 12개 팀 중 6위를 차지했다. 우승 경쟁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2002년 단 1승에 머물렀던 팀이 환골탈태해 평균 관중 1만9000여 명, 주중 최다 관중 4만3700명을 기록하면서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승강제가 생긴 뒤 2014년 2부로 강등됐다. 2015년 1부로 올라왔지만 이듬해 2부로 다시 떨어진 뒤 아직까지 성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 결과 대전은 창단 20주년까지 사장이 19명이나 됐다. 허 이사장은 “거의 1년마다 바꾼 셈”이라며 “스포츠는 전문가가 연속성을 가지고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든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허 이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희망은 있다”고 했다. 대전이 축구 특별시로 불렸다는 것은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 열정을 되살리도록 하겠다”는 그의 표정에서 성공한 많은 경영인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