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스, 거액계약 따냈지만 천사일까 돈보다 성과가 류현진의 자존심이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이번 류현진과 토론토의 계약은 금액 면에서는 성공적이다. 공언했던 1억 달러에는 못 미쳤지만, 자유계약선수(FA) 시장 흐름상 4년 8000만 달러도 좋은 조건이다. 5만 달러 정도의 소소한 차이에도 협상을 접었다는 보라스의 과거 무용담을 고려했을 때, 8000만 달러는 그가 받아낼 수 있는 최고 금액이었을 것이다. 토론토에 보라스는 분명 악마였다.
그런데, 보라스가 류현진에게 천사일지는 의문이다. 돈은 많이 받게 했지만, 그 돈을 받기 위해 선택한 팀이 흡족하지 않다. 선수들은 돈이 곧 자존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라스를 찾고,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워한다. 하지만 박찬호 추신수 등 과거 보라스를 통해 대형 계약을 했던 한국인 빅리거들의 사례를 보면 성공한 계약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LA 다저스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절의 박찬호를 떠올리면 지금의 존재감은 아쉬움이 크다. 2001년 텍사스와 한 대형 FA 계약(5년 6500만 달러)이 ‘먹튀’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부상이 문제였다고 하지만 부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던 환경의 탓이 더 컸다. 현지 스카우트들도 “다저스의 관리에 익숙해 있던 박찬호가 텍사스에서는 아프다고 말도 못 해 부상을 키웠고, 구단과 언론의 비난에 자신감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추신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라스가 성사시킨 거액 계약이 최악으로 평가되면서 선수들은 자존심과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졌다.
보라스의 선택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토론토는 타자들이 강한 아메리칸리그 팀이고, 강팀이 즐비한 동부지구다. 안방구장도 타자에게 유리하다. 류현진은 부상 위험성이 있는 선수이고, 이번 시즌 많이 던져 후유증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캐나다 연고 팀 토론토는 다저스처럼 아시아 선수 관리 노하우가 없다. 아시아 선수들을 잘 아는 팀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지를 안다. 기다려 줄 땐 기다려 주고, 필요한 것은 채워 준다. 이런 점이 성적으로 연결된다.
선배들의 사례를 지켜본 류현진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보라스와 손을 잡은 이상 그의 페이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 ‘류현진이 로스앤젤레스와 가까운 서부 팀을 원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어디든 멀다”는 보라스의 말 한마디에 상황이 정리됐다.
보라스가 류현진의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류현진의 손에 달렸다.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4년간 평가받을 것이다. 한국인 투수 FA 최고액 기록을 세운 것보다는, FA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첫 번째 한국인 선수로 기억됐으면 한다. 그것이 곧 자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