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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지하철의 전쟁 같은 밤[현장에서/김소영]

입력 | 2019-12-26 03:00:00


20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역사에서 서울메트로환경 직원이 승객의 토사물을 치우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소영 사회부 기자

“대합실 D계단 옆 토사물 청소 부탁드립니다.”

20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역사 안 스피커를 통해 이런 방송 멘트가 나왔다. 10여 분 전 술에 취한 여성이 D계단 옆 벽에 대고 토한 것이다. 이 여성의 일행은 어디선가 휴지를 가져와 여성의 입가를 닦아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금 뒤 승강장으로 들어온 열차에 탔다. 계단 옆 바닥의 토사물과 휴지는 그대로 둔 채였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역사 청소와 방역소독 등을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환경’ 소속 A 씨(57·여)가 바닥의 토사물을 치우러 왔다. 역무원의 방송이 있은 지 3분 만이다. 곧바로 A 씨는 메고 온 가방에서 두루마리 휴지 3개를 꺼냈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닥의 토사물을 훔쳐낸 뒤 비닐봉투에 옮겨 담았다. “연말엔 평소보다 3배는 더 많은 토사물을 치워야 해요.” A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송년회를 비롯해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이 되자 지하철 역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취객들 때문이다. 금요일인 20일 밤늦은 시간에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과 홍대입구역을 찾았다. 역사 내에 구토를 한 뒤 그대로 자리를 뜨는 취객뿐 아니라 노상방뇨를 하는 취객도 눈에 띄었다. 기자가 신도림역에 머문 약 3시간 동안 역무실에서는 “토사물을 치워 달라”는 방송을 5번이나 내보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도림역의 토사물 처리 건수는 4532건으로 하루 평균 약 12건이었다. 지하철 1∼8호선 272개 역 가운데 가장 많았다. 지난해 1∼8호선 열차와 역사 내 토사물 처리 건수는 12만6782건이나 된다.

오후 11시 40분경엔 술에 취한 한 남성이 역사 기둥에 대고 노상방뇨를 했다. 조금 뒤 서울메트로환경 직원 B 씨(65·여)가 이곳에 도착했다. 이번엔 대걸레를 들고 왔다. “대변을 본 뒤 그냥 가버리는 취객도 있어요.” B 씨는 노상방뇨는 그나마 낫다는 듯 체념한 투로 말했다. 21일 오전 1시 25분 홍대입구역. 이 역을 종착역으로 하는 외선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자 4명의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잠든 승객들을 깨우기 위해서다. 이 열차에서 내린 한 남성 취객은 반대 선로의 다른 열차 안으로 들어가 졸다가 역무원이 깨우자 이번엔 승강장 벤치에 앉아 졸았다. 신도림역에선 역사 소화전 안에 들어가 잠든 남성을 사회복무요원이 깨운 일도 있었다.

지하철은 1000만 서울 시민의 발이다. 지금도 하루 평균 약 750만 명의 승객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런 지하철이 취객들 때문에 매일 전쟁 같은 밤을 보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