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용 구충제 알벤다졸의 항암효능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 모습. 사진 유튜브 영상 캡처
광고 로드중
서울에서 대장항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 씨는 최근 지인을 통해 사람용 구충제인 ‘알벤다졸’을 수십 통 구매했다. 이 씨에게 진료를 보는 대장암 말기 환자의 부탁 때문이었다. 환자는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구매하려 했으나 품귀 현상으로 쉽지 않자, 비슷한 성분인 사람용 구충제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이마저도 약국에서 품절인 경우가 많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사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김모 씨도 “이달 초 알벤다졸 성분 구충제를 10~20통씩 사가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며 “수요가 많아서인지 도매상들도 ‘소량 공급만 가능하다’는 공지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암 환자들 사이에서 강아지 구충제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낭설이 유튜브를 통해 퍼진 데 이어 최근에는 사람용 구충제를 찾는 암 환자들이 늘고 있다. 1~2알에 1000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데다 사람이 먹어도 안전하다는 인증이 된 의약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광고 로드중
보건당국은 알벤다졸도 항암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알벤다졸도 펜벤다졸처럼 항암제로서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알벤다졸을 오래 섭취하면 간 독성이나 골수독성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시중에는 이미 더 좋은 효과가 검증된 항암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암환자들은 “오죽하면 구충제에 목숨을 걸겠느냐”고 하소연한다. 기존 항암제보다 효과가 좋은 신약은 고가(高價)라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신약인 면역항암제는 약값이 월 1000만 원 이상 나가 암보험이 없는 환자는 쓰기 어렵다”며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높이더라도 면역항암제 급여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