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고향’전 와엘 샤키-모나 하툼 등 국내외 작가 16인 작품 전시 아랍 현대 미술의 핫 트렌드…역사와 개인 관점에서 소개
와엘 샤키의 ‘십자군 카바레: 1929년 자크 드 몰레 대주교의 예루살렘 함락(클로드 자캉의 1846년 회화를 따라)’. 프랑스 19세기 화가 클로드 자캉은 십자군 성전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 자크 드 몰레의 예루살렘 함락 장면을 묘사했지만 이는 허구의 전투 장면이다. 가짜 전투를 다시 차용한 작품은 서구 역사 서술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 및 리손 갤러리 제공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최근 이러한 중동 미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전시 ‘고향’이 열리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권진 큐레이터는 “전시 한 번으로 전체를 보여주기 어려워 공통 주제를 ‘고향’으로 정했다”며 “자신의 고향을 잃었거나, 고향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 개념을 돌아봤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국내외 16명 작가(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는 건 이집트 출신 와엘 샤키(48)의 설치 작품 ‘십자군 카바레’와 베이루트 출신 모나 하툼(67)의 영상 작품 3점이다.
베이루트 출신 작가 모나 하툼의 ‘거리 측정’(1988년·위 사진)과 팔레스타인 출신 나이브 아티스트 압둘 헤이 모살람 자라라의 ‘압둘 헤이 어머니의 집’(1990년). A Western Front Video Production, Vancouver ⓒMona Hatoum. Courtesy of the artist·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두 작가의 작품은 중동 작가들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를 각각 대변한다. 샤키는 역사에 대한 의문을, 하툼은 ‘아랍의 봄’이 증명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는 사회 속 불안한 개인을 다룬다. 이렇게 복잡한 정치 사회적 배경을 진솔하게 풀어낸 작가가 있기에 중동 미술은 국제 미술계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권 큐레이터는 “중동은 지리적 특성상 역사 속에서 서구와 교류가 많아 작품의 에너지를 유럽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2006년까지는 중동 작품의 85%가 지역 컬렉터에게 팔렸지만 2008년부터는 북미, 유럽, 아시아로 컬렉터가 확대됐다. 샤키의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화선 바라캇컨템포러리 디렉터는 “중동은 커다란 정치 경제적 잠재력을 지녔고 훌륭한 예술가도 많지만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며 “비서구권 미술을 주시하는 국제적 흐름에 맞춰 중동 동시대 미술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