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은 수전(水戰)이 약했다. 조선의 구상은 강화에서 해상과 수로를 이용해 전국의 군대를 통제하면서 체계적인 방어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에 고립되다 보니, 연락병을 이용한 약간의 통신은 가능했지만 체계적인 방어전을 치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8도 근왕군의 목표가 남한산성을 구하는 것이 돼 버려 청군에게 행군로를 간파당했다. 가뜩이나 기동력과 실전 경험이 풍부했던 청군이었다. 그중에는 조선군이 잘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도 있지만 승리한 경우도 전멸을 면했다는 것이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지는 못했다.
남한산성에서는 엉뚱한 문제가 발생했다. 산성에 고립된 관료들은 제각기 수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중 하나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성벽에 세우고 병사들을 쉬게 하자는 것이었다. 문관들이 건의를 했는데 무관들이 실행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문관들은 직접 성벽에 올라가 지휘관을 문책하기도 했고 인조에게 하소연했다. 결국 인조까지 나서서 무장을 불렀다. “왜 허수아비를 만들지 않는가.” 무장이 대답했다. “허수아비만 만들면 뭘 합니까? 군복을 입혀야 하고 무기도 들려야 합니다. 병사 옷도 없는데 무슨 옷을 입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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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문가의 수난시대다. 전문가가 무시받는 사회는 평등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아니라 무지가 지배하는 사회일 뿐이다. 진실한 전문가를 발탁하고, 전문성의 영역을 보호하는 사회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룩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