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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구충제 해법 네카가 나서라[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

입력 | 2019-12-05 03:00:00


개 고양이 등의 기생충을 잡는 데 쓰이는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 한 미국인은 펜벤다졸 복용법을 소개하며 “이 요법으로 완치된 환자가 5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조 티펜스 블로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폐암 4기로 투병 중인 개그맨 김철민 씨가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한 뒤 근황을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김 씨는 “펜벤다졸을 7주째 먹고 있으며 오늘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간 수치가 이 구충제를 복용하기 전보다 떨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펜벤다졸은 개 고양이 소 같은 동물의 위장에 기생하는 원충 회충 구충 기생충 등을 박멸하는 데 쓰이는 구충제다. 펜벤다졸이 항암 치료제로 둔갑한 것은 미국에서 폐암 4기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다는 조 티펜스 씨가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완치했다는 증언이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티펜스 씨는 다른 항암치료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동물약국에서는 펜벤다졸 성분이 함유된 동물 의약품은 품절 사태를 맞았다. 심지어 기자 주변에서 다른 말기 암 환자도 이런 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아지 구충제의 항암 효과는 현재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대한 국내외 모든 논문을 조사한 김흥태 국립암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많은 논문을 분석한 결과 연구 수준이 떨어지고 근거가 부족해 항암 효과도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하지만 여전히 논란이 있어 더 검증해보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항암 효과를 검증하려면 사람이 복용하기에 맞는 알약을 만들고 안전성 평가를 위해 동물실험이라는 전(前)임상실험을 거친 뒤 사람에게 투여하는 1상까지 가는 데만 만 2년이라는 시간과 20억 원이라는 비용이 든다.

문제는 강아지 구충제뿐만 아니라 사람이 먹는 구충제도 구해서 먹는 말기 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강아지 구충제를 구하기 힘들어서 대안으로 복용한다는 것이다. 말기 암 환자는 이미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아지 구충제가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자료와 유효성이 없다고 말한들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약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강아지 구충제 말고도 많았다. 유전자 치료제로 알려진 인보사가 대표적이다. 인보사 개발자는 “암세포나 다른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조과정에서 방사선 처리를 했기 때문에 안전성과 유효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약을 투여한 환자는 여전히 불안하다. 인보사를 판매한 국내 제약사가 일일이 환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투약 부작용이 있는지 점검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환자 개인정보를 알기가 불가능해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다. 혈압약, 위장약의 발암물질 논란을 촉발했던 발사르탄과 라니티딘 사태도 국민을 한참 동안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태 초기에 보건당국이 책임지고 개입하지 못하다 보니 논란이 더욱 커진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보건복지부 산하에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네카)이라는 곳이 있다. 네카는 신약이나 임상 의사의 시술을 비롯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공공기관이다. 예전에는 각종 신약이나 시술과 관련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네카에서 많은 것을 관찰, 연구해 발표하기도 했다. 글루코사민의 관절염 치료 효과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해 건강보험 급여에서 제외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또 로봇수술의 유효성과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전립샘암 로봇수술만이 유일하게 기존 수술법보다 치료 성과가 좋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카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각 병원의 자료를 빨리 취합해 분석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술의 임상적 안전성을 모니터링하는 네카는 필요하다면 개인정보보호법의 예외를 인정받으면서까지 공공의료기관의 민감한 환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네카 관계자는 “인보사 문제도 네카가 환자들의 동의를 받아 시술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를 현재 시스템으로도 빠르게 평가할 방안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펜벤다졸도 마찬가지다. 네카는 말기 암 환자 중에서 펜벤다졸과 기존 치료제를 병행 복용하거나 펜벤다졸만 복용하는 환자군(群)을 구분해 관찰할 데이터를 확보해 연구할 능력이 있다. 왜 이 같은 훌륭한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가. 부처 간 책임 공방 때문에 부담스럽다면 청와대가 나서서 조정해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겠다는 심정으로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또 다른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