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소수파 야당이 다수파의 의회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허용된 제도다. 정치적으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전술이다. 미국 상원에선 반대하는 법안 등 지정된 안건이나 의제와 상관없는 발언을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낭독하거나 심하면 전화번호부를 줄줄 읽기도 했다. 단상에서 오래 버티는 체력전이 중요하기 때문인지 필리버스터는 ‘마라톤 토크’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제헌의회 때 필리버스터가 도입됐다가 1973년 폐지됐으나 2012년 국회법 개정으로 부활했다. 우리 국회의 필리버스터도 무제한 토론을 허용하지만 의제를 벗어난 발언은 금지된다. 지정된 주제를 벗어난 발언을 하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체력도 그렇지만 법안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 것이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카드는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의 본회의 상정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여당은 지금 필리버스터를 허용하면 신속처리안건 처리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고, 한국당은 여당이 선거법을 강행 처리할 거라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 민생법안을 처리하는 원 포인트 국회라도 먼저 여는 게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