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리단길 핫플레이스 독립서점 ‘어서어서’
‘어서어서’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의 줄임말이다. 2017년 6월 문을 열어 경주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양상규 사장은 “공모를 통해 한두 달 단위로 경주에 머물며 책방을 운영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경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점이 자리한 곳은 황리단길이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이자 관광 필수 코스다. “높은 매출은 황리단길 덕분”이라는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방문객 수가 매출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후광 효과는 30∼40% 정도인 것 같아요. 우선 서점은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7년 6월에 문을 열었어요. 인근에 서점이 ‘어서어서’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어서어서는 어른들의 놀이터 같았다. 나뭇결을 훤히 드러낸 오르간, ‘철수와 영희’가 찍힌 교과서, 꾸깃꾸깃한 사전…. 추억의 잡동사니들이 책만큼 꽉 차 있다. 그 가운데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책을 읽고 마음을 치유하라는 의미로 만든 ‘책 봉투’. 바구니에는 모두가 알 만한 책을 담아 둔다. 경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점을 방문한 30대 신재연 씨는 “모르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장을 찍으니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김유경 씨는 “경주에 다녀온 지인이 작은 박물관 같은 서점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책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오르간을 치다 보니 훌쩍 40분이 지났다”고 했다.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책 큐레이션은 어떨까. 이곳은 문학서점을 표방하지만 모든 장르를 두루 취급한다. 입고 기준은 양 사장의 ‘완독 여부’. 모든 공간은 시각적 개성에 힘을 줘 구성했다고 한다.
“시집은 출간일이나 출판사가 아닌 색깔별로 분류해 배치했어요. 사진 찍는 공간도 곳곳에 뒀고요. 눈길을 잡아끌어야 책으로 손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졸업 뒤 사진관, 은행 등을 거쳐 2013년 고향인 경주에 식당을 차렸다. 서점 창업에 필요한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식당이 자리를 잡자 인근에 저렴한 월세를 구해 서점을 열었다. 점심·저녁에는 식당, 남는 시간에는 책방을 오가며 반년간 두 집 살림을 했다.
“관광지 외엔 즐길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서점 매출이 예상외로 괜찮았어요.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서 오랜 꿈인 서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서점에 매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서점을 어렵게 꾸려가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서점은 나의 분신이다. 이윤이 가장 큰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서점이라고 잘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책을 계산할 때 보통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말해주지만, 여기선 양 사장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책 가격을 모두 외워요. 기계를 사용하면 아날로그적 감성이 훼손될 것 같아서요.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비기(秘器)를 습관처럼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