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옷에 검정 잉크를 묻힌 채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어 장미꽃에 분홍색 페인트를 묻혀 천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천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또 구른다. 세상과의 완전한 고립. 겨우 일어선 그의 몸엔 검정색, 분홍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두 팔을 벌려 다가선다. “Hug me”(안아주세요). 그러나 10여분이 흘러도 그를 안아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무용수가 살포시 안아 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IAF 개막식.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고상우(40) 씨의 퍼포먼스 주제는 ‘외로움’. 고독에 몸부림치던 사내의 옷에는 물감이 묻어 있었고, 오프닝에 참석한 관람객 중 그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미국 시카고예술학교를 졸업한 고 씨는 22살에 뉴욕 최대 아트페어인 아모리쇼에 참가하는 등 일찌감치 퍼포먼스 사진작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1월에 열리는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평화’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고 씨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직접 사진 찍고, 디지털로 채색해 하이퍼리얼(hyperreal)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16~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고상우-경계의 확장’ 전시회에서는 바디페인팅 퍼포먼스 촬영 작품 외에도 ‘피에로 사자’, 곰의 ‘겨울잠’, 코끼리의 ‘키스’, 호랑이의 ‘운명’과 같은 신작들이 전시된다.
그는 몇 주 동안 동물원에 머물며 촬영했다. 사자와 호랑이의 노란색 털도 반전시키면 푸른색 피부가 됐다. 그의 ‘푸른색 피에로 사자’는 압도적인 눈빛과 분홍색 하트모양이 신선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사진을 촬영 뒤 5GB까지 용량을 늘려 디지털 페인팅으로 세밀하게 채색한다. 사자의 눈동자 속 홍채를 그리는 데만도 1주일 이상 걸리고, 한 작품 당 3~4개월씩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분홍색 하트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에게 새로운 심장과 생명을 준다는 상징이다. 그는 “도심의 대형 빌딩이나 운동장, 동물원 등에서도 전시해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싶어 극사실적인 채색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문화전문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