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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19-09-27 03:00:00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고양이의 두 귀가 마치 레이더처럼 움직인다. 시선은 앞으로 고정돼 있지만 귀는 32개의 미세한 근육을 움직여 열심히 물체를 확인한다.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일까? 하지만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어가는 작은 벌레 소리를 들은 것일까? 고양이는 45Hz(헤르츠)에서 64KHz(킬로헤르츠) 영역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은 보통 20Hz에서 20KHz 사이의 진동수에 해당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양이는 한 음을 10개의 음으로 쪼개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만큼 음색을 예민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음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고양이가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인간이 지닌 신체적 한계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구성돼 있다!” 1933년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한 물리학자가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활동한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다. 그의 주장은 우주엔 우리가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은 4%뿐이고, 나머지는 암흑물질 22%, 암흑에너지 74%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당시에 암흑물질에 관한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관심을 모을 수 없었고, 그는 괴팍하고 고집 센 과학자 취급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1962년, 베라 루빈이라는 여성 천문학자가 은하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암흑물질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츠비키 교수의 주장은 되살아났다.

인간은 오감 중 90%를 시각에 의지해 살아간다. 우리가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은 전적으로 우리 눈으로 확인 가능한 빛에 의존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넓고 광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인간은 극히 일부분만을 볼 수 있는 맹인에 가까운 존재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한 베라 루빈 박사 역시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다. 당시 그녀가 대학에 입학할 때 교사가 “너는 과학하고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릴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루빈은 프린스턴대 대학원 과정에 등록하고자 했지만 성차별로 인해 입학하지 못했다.

과학은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극히 일부분을 보고 진실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1978년 루빈과 그의 동료들은 11개의 은하를 관측한 결과를 통해, 루빈 자신이 예측한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한다. 츠비키 교수가 예언한 지 45년 만에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을 생각한다면 45년이라는 시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고통받는 당사자에겐 우주의 나이처럼 긴 시간 아니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눈앞에 있는 사실만 보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처럼 보이지 않는 96%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