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옛노래’ 문화 트렌드 부상 H.O.T.-핑클 등 1세대 케이팝 열풍… 7080-쎄시봉 현상과 비슷하지만 향수 단계 넘어 現가요계 직접 영향… 파격적 춤-의상에 10대들까지 ‘푹’ 중고음반 수요 늘고 티셔츠도 등장… 오프라인 시장으로 본격 점화할 듯
세기말·세기 초 감성, 다시 말해 ‘9900(1999∼2000년 무렵) 가요 신드롬’이 불고 있다. 근년에 부각된 시티팝 리바이벌이나 뉴트로(뉴 레트로) 열풍과 시기가 겹치지만 결과 흐름이 조금 다르다. ‘9900 신드롬’은 1996년 H.O.T. 데뷔 이후 시작한 케이팝 아이돌 1, 2세대 음악과 시각 연출에 집중돼 있다. 몇 해 전 뜨거웠던 ‘7080’이나 ‘쎄시봉’ 열풍과도 궤가 다르다.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세대의 향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탑골 블핑’이나 ‘저 언니 이름 뭐죠’에 힌트가 있다. ‘9900’을 적극적으로 경험한 40대 X세대뿐 아니라 20대 후반∼30대 밀레니얼 세대, 10대∼20대 중반의 Z세대를 두루 아우르기 때문이다.
최근 스트리밍 방송을 2개 채널로 분리·확대한 ‘SBS KPOP CLASSIC’은 여러 분출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근래 유튜브에서는 그 시절 가수들의 파격적인 무대 연출 영상을 모은 ‘인기가요 무리수’ 같은 키워드가 인기를 끌었다. 서울 용산구의 복고풍 음악 바 가운데는 1990년대 가요·팝의 가사를 벽에 새기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티셔츠를 파는 곳도 있다. H.O.T., 신화부터 블랙핑크까지 다양한 노래를 DJ가 틀며 즐기는 행사인 ‘슬픔의 케이팝 파티(슬케파)’는 몇 년 전 소모임처럼 시작해 올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코너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28일 부산 공연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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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 가요’ 찾아보기가 Z세대에게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데는 시각적 충격과 함께 장르의 다양성도 일조했다. 이들은 기괴한 헤어스타일과 음울한 록 사운드로 무장한 그룹 ‘이브’에게 일본 그룹 엑스저팬을 원용한 ‘엑스조선’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열광한다. 인연과 윤회의 스토리를 록 사운드에 풀어낸 불교 록 밴드 ‘카르마’의 ‘염라대왕’이란 곡이 화제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9900 가요’의 주역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한국 문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 요소다. 남중권 SBS 라디오편성기획팀 PD는 “이른바 ‘탑골가요’의 인기가 폭발한 시점이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의 경찰 소환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하필 이날 스트리밍에 우연히 양 전 대표도 직접 멤버로 등장한 ‘YG패밀리’ 무대가 나왔다. 현재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의 과거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YG패밀리’ ‘더러워진 세상 속에 자식 (너만은) YG가 가만 두지 않아’ ‘세상이 삐걱 YG Gonna Show That’ 같은 사회비판적 가사 자막이 현 상황과 묘하게 엇갈리며 댓글 속 개그 코드로 거듭났다.
‘9900 가요’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포구에서 주로 중고 음반을 판매하는 ‘도프레코드’의 김윤중 대표는 “2017년 개업하며 카세트테이프 부문에선 김현철 김현식 이승환을 주력으로 생각했지만 H.O.T., 솔리드, 쿨, 노이즈, 태사자에 대한 수요가 많아 놀랐다”며 “이 유행이 올가을 오프라인 시장으로 본격 점화할 것으로 보고 관련 음반 수급에 나섰다”고 귀띔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