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만사 귀찮아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귀찮음이 심하면 내적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내적 동기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 혹은 ‘지금은 좀 힘들어도 계속 하다 보면 나중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지’ 같은 생각이다. 스스로 당근과 채찍을 줘가며 무언가를 해내는, 적극적인 마음이다. 귀찮음에 빠진 아이들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은 일단 다 미루고 본다. 이런 아이에게 부모는 ‘게으르다’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너는 대체 왜 이 모양이니?” “어떻게 먹고살래?” 잔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러면 가뜩이나 없는 동기나 열정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잔소리가 귀찮음을 더 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만사 귀찮아하는 것을 줄이려면 부모가 먼저 잔소리를 줄여야 한다. 그 대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단, 화내지 말고 짧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을 치우라고 해도 아이가 계속 미루고 있다면 “네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치우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야. 네 논리대로라면 우리 집에 청소를 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집은 가족이 다 같이 사는 공간이잖아.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함께 청소를 해야지. 같이 치우자”라고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준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면 그래도 조금은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숙제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모르는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줘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그걸 왜 해야 하는데요”라며 반항적으로 물어도 윽박지르지 말고 이성적으로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
귀찮아하는 것이 심한 아이들은 한번 쉬고 나면 다음 행동을 하는 게 무척 어렵다. 차라리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지 않고 스케줄을 쭉 이어 주는 게 낫다. 그리고 모든 스케줄이 끝나면 정말 푹 쉴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아이들은 늘어질 수 있는 만큼 늘어지는 게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스케줄을 무리하게 꾸리지 않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이의 귀찮음은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선행 학습 대신 부모와 함께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되도록 마련한다. 휴일에는 집 밖으로 나가 등산도 하고 볼링이나 탁구 같은 운동도 함께한다. 집에 같이 있을 때도 “○○야 와서 이것 좀 도와줘”라고 하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