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손/장 피에르 보 지음·김현경 옮김/364쪽·1만8000원·이음
이 책이 쓰인 1992년 프랑스에서는 놀랍게도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88년 프랑스 법은 “사람의 몸이란 곧 인격이다”고 규정했고, 이 인격은 몸의 전체성 속에서만 인정된다. 따라서 잘린 손가락은 신체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물건’이 되고 만다. 내가 기절한 사이 나의 손가락은 ‘주인 없는 물건’이 돼버렸고, 그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정당한 소유권을 갖는다. 따라서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위의 사례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5년 프랑스 아비뇽의 구치소 수감자였던 자넬 다우드는 자신의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법무부 장관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자신의 처지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잘린 손가락은 유리병에 담겨 돌아왔지만 교정당국은 이를 압수한다. 다우드는 “잘린 손가락 속에도 나의 인격이 있다”는 취지로 인권과 사생활 보호법에 호소해 손가락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판사는 잘린 손가락을 물건이라고 판단해 돌려주지 않았다.
광고 로드중
저자는 몸의 속성을 논하기 위해 ‘시체’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시체가 성스러운 물건이자 음식이자 약이며, 때로는 해로운 것이라고 과감히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 시대에는 파리 묘지에서 시신이 자주 도난당했고, 상당수가 해부학 교실로 팔려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 놀라운 건 해부 뒤 남은 인체의 지방이 약장수나 양초 제조자에게 팔렸다는 사실. 심지어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의 결혼식 때 뤽상부르궁을 밝히는 데에도 이 인간 양초가 사용됐다고 한다.
사실 프랑스 민법이 인체를 물건으로 보는지, 인격으로 보는지는 법학자나 관심 가질 만한 주제다. 책이 나올 당시에는 시험관 아기가 탄생하는 등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법과 인체에 관한 논란이 활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법을 출발점으로 프랑스 사회가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결국 인간의 몸은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