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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여성의 언어로 ‘여성’ 읽기

입력 | 2019-08-17 03:00:00

단편집 ‘작은마음…’ 펴낸 윤이형 작가
◇작은마음동호회/윤이형 지음/356쪽·1만4500원·문학동네




2005년 등단한 윤이형 작가는 현실을 공상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네 번째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 대해 그는 “한국 사회에 관해 계속 이야기해 왔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직접적인 화법을 썼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읽고,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어요. 뇌 구조가 바뀐 셈입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은 많은 여성에게 그랬듯 윤이형 작가(43)에게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생각, 언어, 작품이 깨지고 부서지며 기본값을 ‘새로 고침’했다. 최근 펴낸 단편집 ‘작은마음동호회’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내놓은 첫 결실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만난 그는 “나의 언어로 쓰면서도 끊임없이 ‘이게 맞나’ 싶어 괴롭고 힘들었다. 남성의 언어를 떨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부족하지만 변화하는 상태의 나를 솔직히 내보이고, 비판받고, 고쳐 나가려 한다”고 했다.

책에 실린 단편 11편은 제각각 다른 결로 반짝인다. 여성 이슈라는 큰 줄기에 여성 간 갈등, 퀴어, 여성 혐오, 성폭력 등을 얹었다.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는 기혼 여성이 여성주의를 만났을 때 겪는 필연적 분열을 다룬다. 스스로 결혼 제도를 선택했지만, 예상치 못한 부조리와 육아의 무게에 짓눌려 방황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회·시위에 적극 참석하기란 쉽지 않죠. 정치하는 엄마에 대한 외부 시선도 곱지만은 않고요.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만나 기혼 여성의 분열이 극으로 치닫곤 합니다. 하지만 기혼 여성을 가장 혐오하는 건 기혼 여성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비관에서 벗어나 작은 것부터 바꾸고 투쟁했으면 합니다.”

다른 위치에 처한 여성 간 갈등에도 주목했다. 기혼과 비혼 여성(‘작은마음…’), 인간과 로봇 여성(‘수아’), 당사자와 비당사자(‘피클’), 엄마와 딸(‘마흔셋’)이 반목하고 후회하다가 화해한다. 그는 “여성주의 안의 균열과 갈등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차이를 모른 체하기보다 다름을 연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피클’은 각종 미투 사건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유부남 선배와 사귀는 후배 기자 유정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구하지만 동료들은 매몰차게 외면한다. 그의 됨됨이와 평판이 마뜩잖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와 아는 사이일수록 연대가 어려운 아이러니의 핵심을 그는 ‘여성의 여성 혐오’로 파악했다.

“익명의 피해자는 선뜻 지지하지만 아는 사이일 경우 신뢰할 수 있나 없나를 점검하죠. 왜 그런 걸 따질까…. 남성 문법에 따른 여성 혐오 때문이더군요. 피해자의 불안정성이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근거가 돼선 안 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는 미러링 소설이다. 외계 존재에게 납치돼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과 착취로 만신창이가 되는 남성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지시를 따르던 남자는 전처의 말을 떠올린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야. 아무 때나 끌려나와 아무렇게나 대해지는 느낌을.” 윤 작가는 “과격한 미러링에 대해 처음엔 회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여성이 당하는 폭력과 여성이 가하는 폭력은 무게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작품 ‘역사’에는 몸이 잘릴수록 개체가 불어나는 존재가 등장한다. 침묵의 강에 빠뜨려 종족을 절멸시키려는 적들. 그 순간 이들은 강력해진 내성을 확인하며 도약한다. 나약하고 불안정해도 끝내 진화하는 존재에 여성을 빗댔다.

“중요한 건 서로를 향한 작은 마음입니다. 자매가 건넨 믿음으로 다시 나를 믿게 되는 그런 마음들요. 서로의 처지가 달라도 대화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여성에겐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