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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일간 사투에도 “실종자 한분 찾지 못해 송구”…구조대원들 후각 트라우마 남아

입력 | 2019-08-14 12:01:00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현장 119국제구조대원 인터뷰
"100% 임무 완수 못해 안타까워…물살·모기떼 등 어려워"
"교민 통역지원에 감사하다…헝가리 정부도 협조 적극적"




“어디에 계실까. 지금도 뇌리에 있는 건 그 생각입니다. ‘찾아야 하는데, 찾아서 귀국해야 하는데’ 이 마음에 안타깝습니다.” (부창용 소방령)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현장에 파견됐던 소방청 119국제구조대원들의 활동결과 브리핑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 소방청에서 마련됐다.

수상수색 410회, 수중수색 14회, 헬기 86회, 강 주변을 걸어 수색한 구간 거리 약 224㎞.

현지시간 5월29일 밤 9시5분께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탄 허블레아니호가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시긴호에 부딪혀 침몰한 직후 현장에 파견된 대원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수색활동에 나섰다. 5월31일 아침 8시40분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수상수색부터 시작했다.

한국인 관광객 33명 중 7명이 구조됐으며 25명이 숨진 이번 침몰 사고에서 한국 정부 합동 긴급구조대는 파견 기간 18명의 실종자를 찾았다. 인양 전인 6월3일부터 10일까지 12명, 인양과 동시에 선체 진입 수중 수색 중 3명, 이후 6월12일부터 22일까지 헝가리측과 수색활동 중 2명.

그러나 62일간 공식 파견을 마치고 귀국한 뒤 가진 활동결과 브리핑에 참석한 구조대원들의 마음은 다뉴브강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때보다 무거웠다. 실종자 1명을 한국으로 모셔오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6월24일부터 현장을 지휘했던 2진 대장 김승룡 소방정은 “두달 동안 전체 실종자 26명 중에서 25명을 수습했는데 실종자 한분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다. 귀국할 때도 100% 임무 완수하고 돌아오고자 했으나 한분을 찾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서 철수하게 된 대원들의 발이 쉽게 떨어질 리 만무했다.

김 소방정은 “7월 중순께 마무리하려다가 한번 더 연장한 게 7월28일이었다”며 “헝가리 정부 측에서 8월19일까지 나머지 한분 수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헝가리 정부의 약속을 믿고 철수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철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높은 수위와 물살 등 수색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직접 수중 수색 활동에 나섰던 박성인 소방장은 “생명줄로 몸을 지탱해 줘야 원활하게 수색할 수 있는 정도였고 물살이 센 쪽으로 벗어나면 제가 주체를 못하게 날리는 정도였다. 사다리쪽으로 복귀할 때도 생명줄을 당겨 돌아왔다”고 당시 활동 상황을 설명했다.

게다가 수색 활동을 펼친 다뉴브강 밑엔 붕괴된 다리 잔해물 등도 수색 활동을 지체시켰다. 물살이 교각에 부딪히면서 유속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잠수복은 물살에 맞는 면적이 넓어 생명줄을 잡지 않으면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대원들은 전했다.

여기에 모기떼와 진흙벌 등도 대원들의 수색을 어렵게 만들었다.

수중 수색은 119국제구조대원들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간 인도적 차원에서 나간 국제지원활동 대부분은 지진 현장이었다.

부창용 소방령은 “지진은 건물 붕괴가 많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는 상황인데 수중 수색은 어디 있는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배에 있다면 배를 집중 수색하고 인양하며 되는데 배에 있는지, 수중에 있는지, 떠내려갔는지, 흘러가다가 수중에 걸려있는지 (구조자) 상황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그간 수색활동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에 소방청은 도시탐색구조(USAR) 위주였던 업무수행 방식을 수난, 항공기, 지진 대응 등으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여기에 이번 수색에 참여한 대원들은 필수 공통장비 외에 사고유형별로 특수장비를 사전에 준비해두는 방안을 인터뷰에서 요청하기도 했다.

수색 과정에선 희망과 좌절이 수시로 교차했다.

침몰 사고 직후 현장에 급파됐던 1진 대장 부창용 소방령도 “배를 인양하면 나머지 분들이 계실 거란 희망을 품었는데 저희 국민 세분과 헝가리 선장 한분만 계시고 3명이 안 계셨다. 배 인양 이후 3일동안 쫓아다지면서 선체 수색을 직접했는데 결국 안 계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양 직후 선체를 수색했던 이재칠 소방위도 “(인양 전까지) 7분이 남아 계셨잖아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7분이 (선체) 안에 다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들어가보니까 3분이 계신 거에요. 더 들어가려고 하니까 헝가리 측에서 잘못하면 감전될 수 있다며 못 들어가게 막더라고요”라고 심정을 전했다.

두 달간 수색활동이 끝나고 귀국한 지도 2주가량 지났지만 대원들은 아직 헝가리 다뉴브강과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는 다짐이 아직 대원들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승룡 소방정은 “두달 동안 머릿속에 실종자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들어오는 생각을 찾단할 수 없었습니다. 두달동안 그 생각 속에 빠져 있다보니까 그 자체가 트라우마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힘든 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후각 트라우마’의 잔상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김 소방정은 “다뉴브강 주변에서 사체 냄새라든지 여러 가지 냄새를 접하게 되는데 그걸 겪으면서 남아있는 트라우마가 있다. 시각적 트라우마만 강조하는데 두달동안 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있으면서 후각이 주는 트라우마도 오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성태 소방경은 “현장에 도착해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볼 때 접근해서 일일이 들여다보는데, 흔적들을 찾다 보면 냄새들을 엄청나게 맡는다”며 “생활하다가 유사한 냄새가 나면 본능적으로 ‘오늘 뭐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구체적으로 후각 트라우마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김 소방정은 “임무 수행 후 4박5일씩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했는데 그게 상당히 도움이 됐던 것 같다”면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노출돼 있던 대원들은 정기적, 지속적으로 다년간 치료할 필요가 있다. 해외출동뿐 아니라 국내 대형 재난에 노출돼 있는 소방대원들은 퇴직 후까지도 치료가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수색 과정에서 헝가리 교민들과 헝가리 정부의 도움이 컸다.

부창용 소방령은 “헬기를 타면 조종사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무전이나 휴대전화가 안 됐다. 그때 (교민 자원봉사자가) 탑승해서 통역해주고 보트에도 같이 타 통역을 도와주셨다”며 “대사관에서 통역이 나와있었지만 워낙 활동범위가 넓고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에 통역이 많이 필요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헝가리 정부는 협조에 적극적이었다.

이재칠 소방위는 “헝가리측이 저희들이 요구한 건 다 들어줬다. 유실망을 설치해 달라고 하면 다음날 유실망을 막고 어디까지 막았는지 헝가리측에서 다 얘기해줬다. 저희들이 요구한 건 무조건 다 해줬다”고 말했다.

헝가리 내무부 장관은 한국과 헝가리 구조대원들을 향해 “헝가리나 한국에서 영웅을 만들고 싶지 않다”며 대원들의 안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조대원들이 귀국한 이후 헝가리 내무부 장관은 한국에 수색 활동 당시 썼던 것과 같은 와이어를 기념품으로 제작해 감사장을 보내왔다.

이를 본 부창용 소방령은 “국민을 다 찾지도 못하고 마무리도 안 됐는데 표창을 받을 처지가 아니여서 안 받겠다고 했다”며 “(감사장은) 한국에서 헝가리측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사고가 났을 때 우리나라가 그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해줄 있겠나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고 헝가리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