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속 소외’ 왜 못 구했나]‘봉천동 탈북 母子’의 비극
① 아파트 월세 체납, 1년 넘게 ‘깜깜’
정부는 2014년 2월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의 사건 이후인 2015년 12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복지제도가 워낙 다양하고 자격 기준과 신청 절차도 제각각이어서 여기서 소외된 가정을 ‘위기가구’로 선정하고 직접 찾아가 수급 방법을 안내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표적인 게 공공임대주택 월세가 3개월 이상 밀린 경우다. 이러면 지역개발공사 등은 연체자 정보를 보건복지부에 공문으로 알리고, 복지부는 관할 주민센터로 전달해 상담과 조사를 벌이도록 해야 한다.
한 씨는 2009년 12월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같은 달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아파트를 임차했다. 이후 월세가 여러 차례 밀려 2017년 1월부터 임차 계약이 해지됐지만 퇴거 조치를 당하진 않았다.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엔 월세(16만4000원)가 16개월 치나 밀린 상태였다.
② 관리비 체납 통보, 뒤늦게 추진
한 씨는 전기요금도 16개월간 내지 못했다. 전기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의 정보는 한국전력공사가 복지부에 통보해야 한다. 한 씨는 여기서도 제외됐다. 한 씨의 임대아파트에선 전기료를 가구마다 따로 내지 않고 관리비에 포함시켜 관리사무소가 한꺼번에 걷어서 낸다. 한전이 개별 가구의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위기가구 발굴 정보에서도 누락되는 구조다. 이는 지난해 4월 ‘증평 모녀 자살’ 사건 때 이미 지적됐던 허점이다. 복지부는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직접 관리비 체납 정보를 수집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③ 기초생활 수급 탈락, 조사 대상서 제외
1만4108원, 3858원, 0원….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모 씨 모자의 통장 속 잔액이 점차 줄어들었을 그들의 희망 크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경찰은 한씨 모자가 굶어서 숨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채널A 제공
④ 고용보험 자격 상실, 처음부터 가입 안 해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가입자 자격을 잃은 뒤 이를 다시 취득하지 않고 실업급여도 받지 않는 실업자의 정보를 복지부에 보내고 있다. 한 씨는 이 과정에서도 제외됐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던 2013년 당시에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오히려 안전망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⑤ 영양 공급 지원, 몰라서 신청 못 해
저체중 등 위험 요인을 지닌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보충식품을 제공하는 ‘영양플러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적이 있으면 위기가구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 씨는 이런 혜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안내받지 못했다. 관할 보건소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방문하며 권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웃 A 씨는 “한 씨는 항상 베이지색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며 이웃과 말도 섞지 않았다. 복지 혜택을 스스로 찾아다닐 만한 기운도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