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너스 인 퍼’ 초연 이어 두번째 주연 이경미
이경미 배우는 “그날그날 무대에 올라 모든 걸 쏟아내고 다시 회복하는 제 모습이 하루살이 같다”며 웃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갑’을 도발하는 ‘을’, 남성을 압도하는 당돌한 여성. 권력관계 전복의 묘미를 보여주는 연극 ‘비너스 인 퍼’가 더 짜릿하고 영악하게 돌아왔다. 작품 속 압도와 전복의 주체는 여성 ‘벤다’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벤다를 맡은 배우 이경미(29)를 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초연 때보다 대사와 행동을 더 강하게 하고 싶어 거친 면모를 최대치로 끌어냈다. 거침없는 성격은 벤다와 비슷한 편인데, 작품을 맡고 제 일상 행동까지 더 거칠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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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벤다는 오디션장에 나타나 연출가 ‘토마스’에게 “이 배역 꼭 해야겠습니다”라며 들이댄다. 여느 지원자와 다른 당돌함에 놀란 토마스는 여전히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지만 대화가 계속되며 권력의 중심축은 묘하게 벤다로 옮겨간다.
이경미는 처음 대본을 본 순간을 떠올리며 “연극에 이런 독보적, 영웅적 여성 배역이 있어 놀랐고, 그 대본이 내게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극을 맛깔나게 살리는 건 이경미의 ‘칼 딕션’이다.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과 정확한 발음 때문에 김민정 연출과 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수위가 높은 대사도 무표정으로 똑 부러지게 발음하니 제작진, 관객이 재밌어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벤다는 무대 퇴장 없이 100분을 꽉 채울 만큼 대사 양이 많다. 이경미는 “실은 대사 양보다도 치명적 매력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상대역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긴장감 때문에 요즘 호흡이 망가져 대사를 건너뛰는 악몽을 가끔 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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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무대에서 눈으로 말하고, 상대 눈을 바라보려고 해요. 진짜 눈에서 진짜 인물과 감정을 마주할 때 느끼는 짜릿함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나 봅니다.”
1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4만5000·5만5000원. 16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