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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잊혀진 의사자들’ [현장에서/구특교]

입력 | 2019-07-24 03:00:00


이근석 의사자 기념 표석을 한 시민이 밟고 지나가고 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구특교 사회부 기자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인도에 설치된 신형수 의사자(義死者) 기념 표석 앞. 표석 옆에 있는 가로등과 전신주에는 ‘위험’이라고 적힌 안전띠가 조잡하게 묶여 있었다. 반대쪽엔 부서진 차량의 부속품이 버려져 있었다. 신 씨는 1998년 버스 탈취범을 제지하다 목숨을 잃었다. 표석 맞은편의 철물점 주인(70)은 “최근에는 표석 바로 앞이 쓰레기를 모아두는 장소가 됐다. 여기서 오래전부터 일했는데 표석을 관리하거나 닦는 사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최근 서울에 있는 의사자 기념 표석 14곳을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에 설치된 의사자 기념 표석은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각 구청이 설치와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의사자 기념 표석이 설치된 곳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잊혀진 공간’이었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설치된 이창우 의사자 표석에 적혀 있는 글씨는 흐릿해져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 씨는 2006년 한강 선착장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 숨졌다. 이곳 표석을 관리하는 서울시한강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관리해야 하는 다른 시설물이 많아 표석까지 신경 쓰기 힘들다. 표석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위치를 알려 달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14곳 중 표석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진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송파구 탄천변의 한 공원에 있는 양병모 의사자의 표석을 찾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또 양 씨 표석에는 ‘2003년 8월 28일 탄천에 빠진 친구를 구하다가 자신을 희생했다’고 적혀 있는데 서울시가 작성한 ‘의사자 기념 표석 설치 현황’에는 ‘양 씨가 2001년 1월 10일 익사했다’라고 돼 있었다. 설치 현황에 기재된 양 씨의 사망일이 잘못 기록된 것이다.

중구 명동에 있는 이근석 의사자의 표석은 길바닥에 설치돼 있었다. 가로 30cm, 세로 30cm의 작은 크기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2년 전 인근 상점의 영업과 시민들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 들어와 인도에 세워져 있던 표석을 없애고 바닥에 다시 설치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던 이 씨는 1997년 소매치기범을 검거하려던 경찰을 돕다 소매치기범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당시 소매치기범 검거에 나섰던 김석환 경감은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표석을 설치한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저희에게는 일회성 보상보다는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심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2007년 중국 유학 도중 학교 동료를 구하다 숨진 김진호 의사자의 아버지 김원기 씨의 말이다. 의사자 유가족들은 대부분 김 씨와 같은 얘기를 했다. 의사자 표석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잊혀진 의사자들’이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구특교 사회부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