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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혁명 진압 ‘홍콩의 철녀’… 강경노선 치닫다 궁지에 몰려

입력 | 2019-06-18 03:00:00

퇴진 압박 직면한 캐리 람 행정장관
민주화 지도자 조슈아 웡 출소 일성 “람이 눈물 흘릴때 시민은 피흘려”
강경발언-뒤늦은 사과 거센 역풍… 송환법 반대서 람 퇴진 운동 번져
시민들 “우린 중국 통제 원치않아” 一國兩制 약화-홍콩의 중국화 우려




조기 석방된 ‘우산혁명’ 주역… 출소하자마자 시위 현장으로 17일 홍콩 입법회(의회) 인근에서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인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이 시위대와 취재진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우산혁명 당시 법원의 시위 해산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 등으로 수감됐던 웡은 이날 홍콩 당국에 의해 조기 출소했다. 그는 출소 직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홍콩=AP 뉴시스

“캐리 람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그는 행정장관에 맞지 않는 인물입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의 지도자 조슈아 웡 씨(22)가 17일 출소해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웡 씨는 “우리는 시위를 통해 홍콩인들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람 장관의 억압에 침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며 “(람 장관이) TV에 나와 눈물을 흘릴 때 홍콩인들은 정부 청사와 입법회(의회) 앞 시위에서 피를 흘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산혁명 당시 법원의 해산 명령에 불복한 혐의로 징역 2개월 형을 받아 5월 수감됐지만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풀려났다. 웡 씨의 조기 석방이 홍콩 당국의 화해 제스처인지 일반적인 절차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시작된 시위가 16일 대규모 시위를 기점으로 정권 퇴진운동으로 바뀌며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은 홍콩 범죄인을 중국에 보내 재판을 받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7일 입법회 인근에서 만난 얼빙 벨로로스 씨(37)는 “많은 홍콩인들이 (람 정부의) 퇴진을 원한다. 관련 부서, 경찰, 입법회 모두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6일 시위에는 2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약 748만 명의 홍콩 인구 중 약 27%가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람 장관이 이날 밤 뒤늦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의 사실상 폐기를 설명했지만 시민들은 이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캐리 람 당신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다. 퇴진하라’는 문구와 람 장관을 거짓말쟁이 독나방으로 표현한 사진과 모형이 시내 곳곳에서 보였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중국 중앙정부는 행정장관과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법에 따른 통치를 계속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며 람 장관에 대한 지지를 밝혔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사퇴시키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의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로 3년이나 남았지만 홍콩 매체들은 벌써 ‘레임덕(지도력 공백)’ 현상을 예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람 장관이 15일 법안 중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사과하지 않고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여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람 장관은 정무국장을 맡았던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혁명을 강경 진압해 ‘홍콩의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중국 지도부의 신임을 얻었지만 결국 이런 성향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람 장관은 친중파 선거인단이 장악한 간접선거를 통해 행정장관에 당선된 뒤 친중 정책을 펼쳐 홍콩의 중국화, 일국양제(一國兩制) 약화에 대한 우려를 불렀다. 시민 천모 씨(19)는 “홍콩이 중국화하면 우리는 자유를 잃을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이 홍콩을 통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홍콩은 홍콩이고 중국은 중국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시 주석의 사생활 관련 책을 출판하려던 홍콩 서점 퉁뤄안 관계자 5명이 실종된 사건도 홍콩이 중국의 통제권에 놓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시민들에게 공포를 더했다. 17일 취재진이 찾은 서점은 철문이 닫힌 채 굵은 쇠줄이 감겨 있었다. 하지만 ‘빨리 돌아오라’ 등의 응원 메시지가 주변에 많이 붙어 있었다. 한편 미국은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홍콩 시위와 관련해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