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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흔들면 흔들리는 나라

입력 | 2019-06-17 03:00:00

美中 ‘약한 고리’ 韓, 집중타 우려… 美에 밀착한 日, 對中관계 최상
美中 넘나들다 둘 다 잃을 처지… ‘한미동맹 不動’ 中 인식시켜야
흔든다고 흔들리면 치욕의 길




박제균 논설주간

한 놈만 팬다.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으로 유명해진 말이지만, 그 ‘한 놈’은 누가 될까. 굳이 병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적진(敵陣)의 가장 약한 고리를 깨부숴 전열(戰列)을 무너뜨리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조짐을 드러낸 미중(美中)의 패권전쟁. 그 거대한 전쟁에서 자칫 한국이 ‘약한 고리’로 전락해 두 강대국으로부터 집중타를 맞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요즘이다.

일본을 보자. 아베 신조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아부 외교’를 넘어 ‘아양 외교’ 수준이다. 그럼에도 중국과의 관계는 역대 최상급이다. 한국은 어떤가. 화웨이 사태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이 번갈아 가며 ‘저쪽 편에 서지 말라’고 경고장을 날리는 형편이다. 지금은 구두 경고 수준이나, 두 강대국의 겁박이 현실화되는 순간 나라 자체가 갈지자로 휘청거릴 것은 안 봐도 훤하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선 헛된 기대가 없다. 당연히 미국 편으로 여긴다. 적진에 속해 있지만, 양자(兩者) 관계에서 성의를 보이고 국력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볼까. 흔들면 흔들리는 나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000년 마늘 분쟁 때 그랬고, 가까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도 그랬다. 국력이 일본만 못해서? 그보다는 위정자들의 원칙 없는 대응이 대한민국을 ‘약한 고리’로 만들어버렸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중 패권전쟁은 앞으로 우리가 국가의 명운(命運)을 걸고 헤쳐 나가야 할 외교적 도전이다. 그 미증유(未曾有)의 전쟁에서 어느 편에 설지는 자명(自明)하다. 하지만 그 자명한 이유들을 잊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요약해보면….

첫째, 미국은 한국의 동맹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를 보자.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공통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은 같은 편이라고 명기돼 있다. 미국과 한편이 됐기에 한국이 민주 국가로 살아남았고, 오늘날 이 정도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반대로 중국은 북한의 동맹이다. 아무리 동족이지만 북한은 현재로선 우리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주적(主敵)이다. 북-중 동맹조약 2조는 “체약 일방이… 전쟁 상태에 처하면 체약 상대국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해 중국은 우리의 적과 같은 편으로, 적진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 북한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나라로 본다. 한국은 자국 국익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이익 관계국이다. 이러니 한국이 죽었다 깨나도 중국은 북한 편일 수밖에 없다.

셋째, 중국은 패권국가의 조건인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자격 미달이다. 그러기에 주변국은 중국 세력권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굴종의 길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중국이 한국을 이만큼이나마 대접하는 것도 미국과 동맹이란 점 때문이란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넷째, 가장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미국 편에서 떨려 나는 순간 한국엔 걷잡을 수 없는 안보적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상정해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 편에 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외교를 모르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때로 낭만적 환상에 사로잡혀, 때로 80년대 운동권적 반미관(反美觀)에서 헤어나지 못해 미국과 중국이 마치 두 개의 선택지라도 되는 듯 착각해 왔다. 그러면서 중간자(中間者)라도 된 듯, 미중 사이를 넘나들다 동맹인 미국의 신뢰마저 잃어 이제는 미국도 중국도 모두 잃을지 모를 암울한 처지로 빠져든 것이다.

물론 미중이 화웨이 사태로 민감해진 터에 미국 편임을 떠들어 일부러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한미동맹은 중국이 도저히 흔들 수 없는 국가적 원칙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거친 보복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 한,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흔들어댈 것이다. 남이 흔든다고 흔들리는 나라는 결국 치욕의 길을 걷게 돼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